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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컨슈머 라이프/문화탐방

[뮤지컬] 숲 속으로



예전에 썼던 공연평

뮤지컬 <숲 속으로(Into the Woods)>에는 손드하임의 뮤지컬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손드하임은 작사가임과 동시에 작곡가이기 때문에 음악과 가사를 절묘하게 조화시킬 수 있었다. 손드하임의 가사에는 상반된 특성이 동시에 나타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시적이면서도 과학적이고, 간결하면서도 복잡하며, 냉소적이면서 지적인다. 그는 이러한 내용의 가사를 기존의 음악과는 다른 형태의 낯선 멜로디에 담아 독특한 뮤지컬 음악의 미학을 창출했다. 그의 뮤지컬 속에는 권선징악의 단순한 구도를 넘어서는 인생에 대한 폭넓은 통찰이 담겨 있다.

1막의 시작과 함께 우리에게 친숙한 4편의 동화인 <신데렐라>, <라푼젤>, <빨간 망또 아가씨>, <잭과 콩나무>가 등장한다. 새로 창조된 캐릭터인 빵집부부를 축으로 해서 이러한 4편의 동화가 같은 시간과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동화에서 빠질 수 없는 이야기꾼인 나레이터가 적절한 대목마다 등장하여 이야기가 산만하게 흐르지 않도록 조절한다. 옥수수처럼 노란 머리를 구하지 못해 실제 옥수수의 노란 머리로 갈음하기도 하고, 흰둥이 암소 대신 보통의 암소에 하얀 페인트칠을 하기도 하는 등의 코믹한 설정이 웃음을 유발한다.

저주로 인해 아이가 없는 빵집부부는 마녀로부터 하나의 제안을 받는다. 3일안에 우유처럼 하얀 소(잭과 콩나무), 피처럼 빨간 망또(빨간 망또 아가씨), 옥수수처럼 노란 머리(라푼젤), 순금처럼 빛나는 구두(신데렐라)를 구해오면 저주를 풀어주겠다는 것이다. 빵집부부는 재료를 구하기 위해 동화속 주인공들과 얽히고설키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마법의 재료를 모두 구하는 빵집부부는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되고, 마녀는 마력을 잃는 대신 젊음과 아름다움을 되찾는다. 다른 동화속 주인공들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1막의 정합적이고 완결적인 결말을 2막은 수많은 의문부호로 산산조각낸다. 첫 눈에 반한 왕자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는 않을지?(신데렐라), 늑대 한 마리가 사라지면 숲이 안전해지는지?(빨간 망또 아가씨) 탑에 갇혀 지내느라 현실감각을 잃어버린 아가씨가 어떻게 복잡한 세상에 적응할 것인지?(라푼젤) 부패할지도 모르는 거인의 시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잭과 콩나무) 심지어 빵집부부는 마녀 옆집에 살면 아이의 교육환경상 안 좋다고 이사 여부를 놓고 고민하기도 한다. 남편을 잃은 거인부인까지 등장하면서 선악의 기준마저 모호해진다.

1막에서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4편의 동화는 죽은 남편의 복수를 위해 콩줄기를 타고 내려온 거인부인에 의해 위기를 겪게 된다. 모든 위기를 해결해줄 것으로 여겨지는 동화속 왕자들은 권태에 빠져 바람을 피울 궁리나 하고 실제로 이를 실행에 옮기기도 한다. 거인부인에 대한 공포 속에 마을 사람들은 하나 둘씩 죽음에 이르고 남아있는 이들은 조건설적 인과관계를 따져가며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소모적인 논쟁을 반복한다. 결국 이들은 서로간의 의존적인 관계맺음만이 숙명이자 해결책임을 깨닫고 지혜를 모아 거인부인을 물리친다.

2막은 1막의 내용을 해체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1막에서 이야기를 이끌어온 나레이터가 2막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저자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동화적 상상력은 작가의 산물이지만 그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독자의 몫임을 분명히 한 대목이다. 세상일이란 것이 "그 이후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They lived happily ever after)"라는 동화의 기본공식처럼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겪든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위안 삼아 더불어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위기들을 극복할 수 있을 뿐이다.

울창한 숲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무대, 즉석에서 연주하는 생음악, 집중력을 부여한 적절한 조명, 마녀 지팡이의 특수효과 등에서 뮤지컬다운 멋을 느낄 수 있다. 빵집부인의 가창력, 형제 왕자의 코믹한 듀엣곡, 빨간 망또 아가씨의 톡톡 튀는 발랄함 등 개성있는 인물들이 내뿜는 다양한 매력에 흠뻑 빠지는 즐거움이 있다. 다만 3시간이 넘는 공연 시간은 배우와 관객 모두를 지치게 한다. 간결하게 다듬어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