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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컨슈머 라이프/문화탐방

[연극] 동천홍(東天紅) - 갑신정변의 재조명



예전에 썼던 공연평

올해는 갑신정변(1884년) 120주년이면서 희곡 '동천홍(東天紅)'을 쓴 극작가 고(故) 오영진 선생(1916∼1974)의 타계 3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연극 '동천홍(東天紅)'이 1973년 초연 이후 31년만에 다시 무대에 올려지는 셈이다. 실험극장의 명배우로 이름을 날렸던 고(故) 김동훈의 아들 김도훈이 김옥균 역을 맡는 실험극장 데뷔 무대이기도 하다. 공연은 갑신정변(甲申政變)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역사라는 것은 사료라는 원재료(raw data)에 살을 입혀놓은 것이다. 연결고리를 넣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주관이 개입된다. 일정한 시각이 있을 수밖에 없고 이를 우리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즉 사관(史觀)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역사적인 사건을 재구성할 때는 일정한 사관(史觀)을 토대로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글에서도 공연에 의해 재해석된 갑신정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며 그 한도내에서만 의미가 있다. 

김옥균 등의 개화파는 일본의 힘을 빌어 위로부터의 개혁을 도모한다. 우정총국 낙성식을 계기로 폭발과 함께 혁명은 시작되고 임금은 창경궁에서 경우궁으로 옮겨진다. 14개조로 이루어진 신정강이 발표되면서 개혁의 기틀이 마련되는 듯하지만 민비의 요청에 의해 청군이 개입함으로써 개화파의 혁명은 3일천하로 끝나고 혼란의 와중에 홍영식 등은 살해당한다. 인천에서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일본공사관에 숨어있던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은 마치 포로처럼 반강제적으로 일본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종아리 부근에 입은 작은 상처를 놓고 일본공사관에서 호들갑을 떠는 서기관의 모습에서 그 자신의 성격과 더불어 일본의 입장을 엿볼 수 있다. 일본측은 조선의 근대화라는 대명제에는 관심이 없었고 이를 위해 작은 손해조차 감수할 의사가 없었다. 실리외교라는 기본적인 입장하에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놓고 저울질하고 있었을 뿐이다.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영국총영사 아스톤의 모습에서 다른 국가의 입장도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지지가 있을 것이라는 헛된 기대를 품은 개화파의 순박함이 애처롭다.

대극장 공연답게 웅장한 뒷배경과 고전적인 의상 등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인물간의 미묘한 갈등이 대사속에 잘 드러났고 시작과 끝의 배경을 일본공사관으로 설정함으로써 갑신정변을 대하는 일본측의 입장을 선명하게 보여줬다. 연말임에도 불구하고 흥행성보다는 작품성 위주의 공연을 만나볼 수 있었던 점도 특별한 즐거움이다. 정극인 관계로 전체적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내재적 한계가 있겠지만 관객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약간 첨가된다면 몰입이 한층 수월할 듯하다.

우정총국 낙성식을 계기로 일본공사 다께소에와 손을 잡고

'일사래위(日使來衛)'

영국총영사(英國總領事) 아스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