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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컨슈머 라이프/문화탐방

[영화] 봄날은 간다 시나리오




[봄날은 간다]


1. 마당. 낮
마루 끝에 무료하게 앉아있는 상우.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보고 있다.
똑 ~ 똑~

마루 창틀에 기대어 눈을 스르르 감는다.
조용한 집안.

눈 녹은 물만 똑똑 떨어지는 상우집 마당.


2. 집 앞 동네길. 낮
대문이 열리고, 자전거를 끌고 좁은 골목을 빠져 나오는 상우.
동네길을 두리번거리며 할머니를 찾는다.

저 앞에 느릿한 걸음으로 걸어가시는 할머니가 보인다.
가다 서고 또 조금 가다 서는 할머니
마치 세상구경이라도 하는 듯 두리번거리신다.

그런 할머니를 보며 빙그레 웃다가...
자전거에서 내려 천천히 따라간다.

자전거 페달 소리만이 있는 고요한 공간.
저 멀리서 교회종소리가 울린다.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


3. 기차역. 낮
창 너머로 안을 들여다보는 상우.

창을 통해 들어오는 오후 햇살..
할머니는 개찰구를 보고 계신다.

역사 안으로 들어가 할머니 옆에 앉으며

상우 : ..할머니 이제 가요...


4. 상우방, 새벽
벽 한 켠에 이것저것 모아둔 잡동사니들 사이에 놓인 라디오.
낡은 환등기도 보인다.

일기예보가 나온다.
짐을 챙기는 상우

“영동지방 날씨는 .....~”

잠시 듣다가 라디오를 끈다.

 


5. 마루, 새벽
마루에 앉아 신발 끈을 묶고 있는 상우. 하품을 한다.
가방을 메고 일어나 대문으로 나가는데 할머니 방에 불이 켜있다.

노란 불빛이 묻는 마당.
댓돌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할머니의 신발.
방문을 살며시 열어보는 상우. 할머니가 앉아 계신다.

상우 : 할머니 ~

상우 방으로 들어간다.
할머니와 상우 유리창에 어른거린다.


6. 국도, 아침
서울에서 한참 멀어진 듯 차창 옆으로 산들의 모습이 보인다.
상쾌한 날씨
썰렁한 겨울 도로 위를 달리는 상우 차
강릉 92km 표지판이 보인다.
군데군데 눈이 온 흔적이 있는 길.

양쪽의 창을 모두 내리는 상우.
손을 창 밖으로 살짝 뻗어 바람을 느껴보는데
푸드득, 운전석 앞에 놓았던 종이가 조수석 쪽 창으로 날아가 버린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비상등을 켜고 차 밖으로 나오는 상우
손으로 햇빛을 가려본다.
새처럼 하늘을 날아가는 종이.


7 터미널. 아침
터미널 쪽에 목도리로 잔뜩 얼굴을 둘러싼 한 여자가 등을 보이고 서있다.
한 손에는 종이컵을 들고, 어깨에는 작은 가방, 빨간 목도리를 하고 단단하게 차려입은
여자는 시계를 가끔씩 보고 있다. 사방을 두리번두리번.
여자의 전화가 울린다.

은수 : (전화에 대고) 네....

여자의 어깨 너머로 상우의 차가 보이기 시작한다.
전화를 하며 차를 세우는 상우.

상우 : 저 아름녹음실에서 나왔는데요..

차를 세우고는 바깥상황을 살펴보는데
전화를 받으며 걸어오는 은수와 눈이 마주친다.

상우 : (전화에 대고) 죄송합니다~..오래 기다리셨어요

또박또박 상우 쪽으로 걸어오는 은수. 상우 서둘러 내린다.
차에 오르는 은수. 다시 차에 오르는 상우

은수 : 안녕하세요, 한은수라고 해요.. 잘 부탁 드릴께요....... 좀 늦으셨네요

8. 국도, 오후
창 밖으로 겨울햇살이 가득하다.
운전을 하고 있는 상우

상우 : 제가 오다가 약도를 잃어버렸거든요..

말을 하며 은수를 돌아다보면 자고 있는 은수.
상우는 잠든 은수를 바라본다.

상우 : (다시 전방을 향하고) 혼자 찾아보죠 뭐..


9. 시골 길가의 작은 공터. 오후
길가의 작은 공터에 서 있는 상우의 차.
상우는 없고 뒷자리에서 자고 있는 은수.
상우는 종이컵을 들고 창가에 와 은수를 본다.
은수 자고 있다가 눈을 뜬다.
시선을 돌리는 상우

은수 모른 척 차에서 내린다.
기지개를 펴는 은수

은수 : 여기가 어디예요 ?
상우 : 제가 약도를 잃어버렸거든요 ..
은수 : .... 그럼 절 깨웠어야죠

무안한 상우가 커피를 건네준다.
커피를 받으며 주위를 둘러보는 은수


10 대밭, 오후
작은 들판 뒤, 산이 시작되는 곳에 늘어 서 있는 대밭.
그 대밭 옆으로 서 있는 작은 집 한 채.

풍경 속으로 걸어가던 두 사람
잠시 멈춰 서서 대밭 주인인 듯한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눈다.


11 바람 부는 대숲
상우가 대밭을 천천히 거닐며 소리를 찾고 있다.
귀에 손을 기울여 보기도 하고... 그런 상우를 지켜보고 선 은수

바람이 불고 있는 대나무 숲.
조금 거리를 둔 채로, 각자 마이크를 들고 있는 두 사람.

시간경과 -

상우가 작은 낚시의자에 앉아서 소리를 확인하고 있다.
뒤에서 고개를 조금 들이밀고 궁금해하는 은수

상우 : 들어보실래요..
은수 : ....

상우, 헤드폰을 넘기고 녹음기에서 소리를 잡아준다.
헤드폰을 통해 소리를 들어보는 은수.

은수 : (곰곰히 들어본다)...
상우 : 어떠세요 ?
은수 : ..................좀 이상하지 않아요?
상우 : ....
은수 : 아까 우리 들은 거랑 다르고...생각보다 바람이 센 것 같네요.
(헤드폰을 벗으면서).... 좀 더 가는 소리면 좋을 것 같아요 ..
상우 : 음.. 좀 더 가는 소리요 ...
은수 : .....
상우 : 그래요 그럼 ..
은수 : 한번만 다시 해요.

뒤에서 소리가 난다.
대밭으로 들어오는 할머니

할머니 : 밥먹고 해


12 시골집. 오후
굴뚝에서는 밥 짓는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나오고 있다.
마루에 걸터앉아 손을 위로 높이 펴 들고 흔들어 대고 있는 두 사람

상우 : 아니 그렇게 말구요 ..높이 (은수의 팔을 잡아 높이 든다) 이렇게 높이 들어요
그래야 피가 금방 멎어요.

손을 높이 들고 뱅뱅 돌리는 은수
상우 웃으면서 재밌다는 듯이 보고 있다

은수 : (흔드는 자기 손을 보면서 ) 이런 거 어디서 배웠어요 ?
상우 : 할머니가 계시거든요
은수 : 할머니랑 같이 살아요 ?
상우 : 네...
은수 : .........좋겠어요..
상우 : 뭐가요
은수 : 그런 것도 가르쳐주는 할머니가 있어서..
상우 : ....아프시기 전에는 그랬죠 ....지금은 좀 편찮으세요
은수 : .....많이 ?
상우 : 예.. 치매증세가 조금.. 있으세요

방 안에서 들려오는 “밥 먹어”


13. 방
김치, 콩자반, 김구이...몇 가지 반찬이 놓인 소반 앞에 앉아있는 두 사람.

은수 : 힘들겠다. 사진 같은 거 보여드리세요.. 화분 기르시는 것두 좋은데..
상우 : 사진 ..?
은수 : 가능하면 크게 확대해서 벽에 걸어놔요 ..늘 보게끔 하는 게 좋으니까 ....
상우 : 그래요 ? 확대해서 ...? 근데 그런 거 어떻게 알아요 ?
은수 : 방송하다보면 이것저것 많이 알게 되요 그냥 ..

밥이랑 퍼가지고 문지방 너머로 건네주시는 할머니.
상우가 받아 드린다. 산처럼 가득 쌓인 밥.
상우를 난감하게 쳐다보는 은수. 한 숟가락 가득 입안에 넣는 상우.

상우 : 와..진짜 맛있다.

상우를 보고 있는 은수. 도와달라는 표정.
은수 밥을 한가득 퍼가지고 자기 밥 위에 얹어놓는 상우
산 위에 또 산을 얹은 것 같은 상우밥.

상우 ; 됐죠 ? 많이 먹어요 맛있어요

은수 픽 웃는다. 그나마 양이 줄어서 다행스럽다는 듯 상우를 본다.
맛있게 먹는 상우. 은수도 열심히 먹는다.

물을 떠가지구 문지방을 넘어오는 할머니
김치도 찢어주고...반찬도 밀어 넣어주며 옆에서 이 둘을 뿌듯하게 바라보신다


14 공터. 해질녁
들판을 걸어나오는 두 사람. 상우는 자꾸 주머니를 뒤지고 있다.
대밭 할머니 댁으로 말없이 다시 돌아가는 상우..
돌아가면서도 계속 주머니를 뒤진다.

차 옆에 서서 상우를 기다리는 은수.
차창에 코를 박고 안을 들여다본다.
창에 하얀 입김이 묻었다 지워졌다 한다.

운전석 핸들 밑에 꼽혀있는 차 키


15. 국도. 밤

저 앞에 하얀 점 같은 것이 보인다.
헤드라이트를 높게 비춰보는 상우. 점점 다가오자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가 손을 흔들고 있다.
차를 세우는 상우

은수 : 뭐야 ? 어휴 참 차를 세우면 어떡해 ?
상우 : 아니 그냥 ..그럼 어떡해요. 세우라는데..

뒷문이 열리고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가 올라탄다.
그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말이 없는 세 사람..

아주머니 : (힘없고 낮은 목소리) 이 길 끝까지 가 주세요.

화들짝 놀라는 두 사람. 백미러를 슬쩍 보는 상우.
아주머니는 꼿꼿하게 앉은 채로, 밖만 바라본다.
다시 백미러를 보는 상우. 아주머니 목이 보인다.
줄이 한 줄 감겨있다.
놀란 상우. 긴장하며 달린다. 은수도 겁먹은 표정.
그 때-따르릉. 아주머니, 목 뒤로 넘어가 있던 핸드폰 줄을 앞으로 돌려서 받는다.

아주머니: 무서워 죽겠어...곧 가요.

마을입구에 차가 서고 소복여자가 소리도 없이 내린다.
동네를 빠져 나오는 상우의 차

은수 : (식은땀을 흘리며) 무서워 죽는 줄 알았네

슬그머니 룸미러 보는 은수. 깜짝 놀란다.

은수 : (깜짝 놀라며) 어 아줌마. 왜 아직 안 내렸어요 ..

끽 ~ 서는 상우차.

은수가 막 웃는다.


16 밤 국도, 밤
조수석 앞에 있는 통을 열어서 뒤지는 은수

은수 : 뭐 들을만한 거 없어요? 여자만 태우면 트는 테이프 있을 거 아녜요?
상우 : (웃어 넘긴다)
은수 : 죄다 요즘 꺼네. 예전에 듣던 거 좀 그런 거 없나 ?

치지직 치지직 거리더니.. 은수의 방송이 나온다.

상우 : 이거 은수씨 목소리 같은데요 ?
은수 : (끄덕끄덕)

상우 시계를 본다. 11시 20분.

상우 : 녹음방송인가 봐요.. 목소리가 좀 다르네..
은수 : 달라요 ?
상우 : 더 착해요. (웃는다) 한 pd님은 프로를 여러 개 하나봐요 ?
은수 : 두 개에요...<자연과 사람>하나..이거 하나.
근데 저 아나운서예요..
우린 아나운서가 다 하거든요. 이것저것 다해요 ..
(조금 듣더니 음악이 끝나고 자신의 멘트가 나오자) 재미없어.

그러면서 주파수들 돌리려고 손을 뻗는다.

상우 : (손을 막으면서) 왜요. 좋은데.

다시 주파수를 돌려놓는 상우. 은수의 목소리가 다시 나온다.
가만히 있다가 문득 썬글라스를 꺼내 끼는 은수.
상우 궁금하게 바라본다.

은수 : 아~ 쪽팔려.


17 여관, 밤
불이 꺼있던 방에 불이 켜진다.
창문을 열고 런닝차림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는 상우.

잠시 후 옆방에도 불이 켜진다.
은수도 속옷 차림이다. 잠이 오지 않는지 창문을 열고 밖을 본다.
바람부는 창밖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그림이 함께 잡힌다.


18 스튜디오 낮
대밭에서 채집한 소리가 녹음실에 가득하다.
상우를 안내해 준 은수의 동료가 손짓을 한다.
상우, 그 쪽을 보니 통 유리 너머 부스 안에서 은수가 웃고 있다.
은수 선배 나가고, 부스 문 열고 나오는 은수.

상우: 우리 녹음한 소리 작업 하시나봐요...
은수: 네...한 20초 정도만 나가면 되요.


19 로비 낮
복도 끝. 구석에 위치한 자판기
자판기 앞에는 나란히 앉을 수 있는 긴 의자가 놓여있고, 옆으로 창이 나있다
의자에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시는 은수와 상우
둘이 침묵, 커피 마시는 소리만 들린다. 둘은 앞만 보고 있다

상우 : 강릉이 집이에요?
은수 : 여기서 태어났어요.
상우 : 가족이랑 같이 여기 다 있어요?
은수 : 저는 혼자 살아요.
상우 : 결혼.......안하셨나봐요.
은수 : ..해봤어요.
상우 : .......좋겠다 ~
은수 : .. 좋겠다 ? ...
상우 : ...
은수 : 소화기 사용법 알아요 ?
상우 : 네?
은수 : 안전핀을 뽑는다. 노즐을 화원으로 향하고
상우 : 노즐이요?
은수 : 물이 나오는 곳이요. 어디까지 했더라...
상우 : 물 나오는 곳
은수 : 아 노즐 ~ 노즐을 화원으로 향하고
마지막 손잡이를 누른다.
(물 나오는 시늉) 그럼 슈~~
상우 : 그걸 다 외워요 ?
은수 : (손가락으로 앞에 있는 소화기를 가리키며) 매번 여기 앉아서 커피 마시며 외웠어요..

 

20 마루 낮
마루에 식구들 뱅 둘러앉아 아버지를 보고 있다
노래하는 아버지. 늘 부르는 아버지의 애창곡이다.

고모와 상우는 중간 중간 킥킥거리는데
할머니는 손뼉까지 치면서 제일 열심히 관전을 하고 있다.
아버지의 노래가 끝난다. 식구들 사이에 잠시 침묵.
할머니가 박수를 치시더니 주머니를 뒤진다.
100원을 꺼내서 아버지 손에 쥐어주신다

아버지 : 너희들은 왜 말이 없어 ?
고모 : 아~ 엄마가 100점 이라며 그럼 된거지 ..

킥킥거리는 상우. 식구들이 모두 웃는다


21 할머니방 낮
할머니와 고모 앞에 놓여있는 탁상시계

고모 : 엄마 그럼 이건 몇 시야 ?
할머니 : 2시.
고모 : (분침과 시침을 움직이며) 그럼 이건 ?
할머니 : ....

앨범을 들고와 할머니 옆에 풀썩 앉더니 이것 저것 뒤져보는 상우
할머니에게 앨범속 사진들을 보여드린다.

젊었을 때 철도원 복장의 할아버지 사진과 나이든 할아버지 사진,
상우 돌 사진, 상우 어머니 사진 등등..
하얀 김이 뭉게 뭉게 빠져 나오는 증기기관차를 배경으로
파일럿 제복 같은걸 입은 할아버지와 나란히 선 할머니의 사진을 가리키며

상우 : (사진 하나를 가리키며) 할머니 이 사람 누구야 ?
할머니: (느린 손짓으로 사진을 곱게 만져보는 할머니. 수줍어하며) 서방님

고모를 보는 상우. 고모가 “다른 거”하며 눈짓을 한다. 상우, 사진 중 하나를 고른다.
할아버지 젊었을 적 혼자 찍은 사진.. 할머니가 늘 좋아하시는 사진이다

상우 : 이거는요 ? 할머니
할머니 : 우리 서방님이지..
상우 : ..그럼 이건 ?

조금 나이가 드신 할아버지 사진, 인상을 조금 찌푸리고 있다
할머니 앞에 들이민다.

상우: 누구야 ?
할머니 : 누구냐 이 늙은이는 ?
고모: 엄마...아버지. 아버지잖아.

 

상우 그런 할머니를 말없이 보고 있다.
가만히 벽을 바라보는 할머니..
할머니 젊었을 적 양산을 쓰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 벽에 걸려있다.


22. 마루. 밤
난로 옆에서 사과를 먹는 고모와 상우. 고모 사과를 먹다가, 앞에 놓인 껍질을 든다.
끊기지 않게 길게 잘 깎여있다.

고모 : 이거 니가 깎았냐?
상우 : (끄덕끄덕)
고모 : 이건 또 지 할아버지랑 똑같네.....길게 깎으면 바람둥이라는데
상우 : 누가 그래?
고모 : 니 할머니가, 그 깐깐한 양반이 사과 잘 깎는다고 뭐라고 했어.
휴~~. 할아버지 딴 살림을 차렸었던 거 몰라 ?
상우 : 아버지는 더 잘 깎는데.. 근데 아버지는 왜 다르지 ?
고모 : .....참 이뻤어 너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참 잘해줬었다는데..
할아버지가 할머니 사진도 많이 찍어드렸잖아.
근데 니네 할아버지가 다 늦게 무슨 바람이라도 난건지...
엄마 그 곱던 모습이 다 어디로 갔니 ..
상우야 ..너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장가가라.. 응 ?
손주라도 보면 혹시 또 아니..
상우 : ...


23. 상우의 방 (밤)
이부자리 위에 앉아 술을 따르는 상우.
쫄쫄쫄 .. 맥주를 잔에다 따르고 있다,
한 잔 들이키는 데, 핸드폰이 울린다.

상우 : 여보세요...(자세를 고쳐 앉으며) 네. 전데요
아뇨 놀라긴요.. 네 ? 여긴 비 안 오는데요
은수 : (목소리) 들어볼래요 ?

전화기 너머로 희미하게 들려오는 빗소리.
웃으면서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는 상우
문 밖 마당 수돗가에서만 몇 방울씩 물이 세고 있다.

상우 : 나 올 땐 비 안 왔어요 차도 안 막히고. 네,,
네 ..그럼 또 일정 잡히면 전화주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전화를 끊고 창 밖을 보는 상우 . 조용한 마당

시간경과

잠을 청하는 상우.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24. 녹음실 낮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녹음실
녹음실 밖에는 불이 꺼져 있다
중간 중간 끼어드는 딸그락 딸그락 하는 테이프 갈아 끼우는 소리들

믹싱룸 안에 스탠드만 켜놓고 작업하고 있는 상우.
옆에는 그 동안 작업한 테이프들이 쌓여있고 상우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들어보고 있다.
물레방아 소리에 시간을 기록하고는 테이프를 뺀다.
다른 테이프를 끼고 같은 작업을 반복한다.
이번엔 계곡물소리 빗소리 등등의 소리들이 흐르고 있다
상우 앞에 놓인 기기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빨간색 막대기들..


25. 선배녹음실 낮
기계들도 구식이고
녹음부스에 꽃무늬 커텐도 있는 허름한 녹음실.
누군가 부스 안에서 열심히 노래를 하고 있다.
상우가 콘솔 앞에 앉아 있는 선배에게 테잎을 건넨다.

상우 : 이 소리는 뭐에다 쓰게요?
선배 : 물레방아가 이펙트로 쫙-깔리면 얼마나 에로틱한데...수고했다.

부스 안에서 노래하는 사람을 보는 상우.

상우 : 저 사람도 가수예요 ?
선배 : 아니 취미로...한 장에 10만원. 난 요즘 이 수입이 더 짭짤하다.

부스안에서 열심히 노래하는 아저씨.
양복을 좍 빼 입고 열창하고 있다.


26. 산사가는길. 낮
앞서 걷는 상우. 은수는 상우 뒤를 따라 걷는다.
상우가 조금 빨리 걷는 듯 은수에게서 멀어지자 손가락 끝으로 살짝 상우를 붙잡는 은수.

상우 뒤만 따라 걷는 은수
걸음을 느리게 하고는 허리를 쭉 펴서 바람을 막아주는 상우


27. 산사 낮
불상 앞에서 절을 하는 두 사람.
정성스럽게 절을 하는 은수를 보며 따라하는 상우.


28. 산사 마당. 해질녘
처마에 매달린 풍경이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 아래로 쪼그리고 앉아 풍경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상우와 은수

상우 : 아까 뭐 빌었어요 ?
은수 : 바람불게 해달라구요 ..

상우 웃는다.

은수 : 금새 잊더라 ..뭘 간절히 바라다가도 곧 잊어요 그냥
다 변하고, 잊고 그런 거지 뭐.

상우 고개를 끄덕끄덕 하더니 ..

상우 : 안되겠는데요.
은수 : 뭐가 ....
상우 : 저 풍경이요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애요..
은수 : 그럼 기다려야죠.. 소리 따려고 얼마까지 기다려 봤어요 ?
상우 : 한 일년 ?
은수 : 일년 ?
상우 : 보리밭 소린데 정말 포근해요 . 근데 그게 해마다 달라요.
옛날에 듣던 그 소리가 나올까 해서 또 가고 해마다 따러 다녀요.
꼬박 일년을 기다리는거죠.
은수 : 궁금하네요. 그 소리가 어떤 소릴지..

풍경아래 마이크에서 길게 늘어진 줄을 따라 가면
상우는 햇볕이 드는 양지에 녹음기를 세팅하고 쭈그리고 앉아있다.

조용한 산사...혼자서 탑돌이 하는 듯이 탑 주위를 천천히 걸으며 콧노래를 흥얼대는 은수.
은수, 걸으면서 흘낏 흘낏 상우 쪽을 보고 상우는 풍경만을 보고 있다.
하지만 상우 귀에는 은수의 노랫소리만이 잡힌다.
상우, 피식 웃어본다.

마당에 지나가는 스님에게 쫓아가는 은수.
스님과 합장을 하며 인사한다.


29. 산사의 풍경들 (밤)

군불을 때주고 있는 동승이 얼굴에 숯검정을 묻히고 앉아있다.
깜박깜박 조는 동승. “타닥타닥” 소리가 깊어간다..
방안에 오가는 은수의 실루엣
상우는 건너편 마루에 걸터앉아 은수의 그림자를 바라본다.


30. 산사에서의 은수 방 밤

조용한 산사. 정갈하고 소박한 방안에 누워있는 은수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리고 눈만 굴리며 방을 구경한다.
잠을 청하는 은수.

조용하더니 바람이 부는지 풍경소리가 맑게 들려온다.
눈을 뜨는 은수.

 


31. 산사에서의 상우 방 새벽녘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잠에서 깨어 두리번거리는 상우.
일어나자마자 시계를 확인한다.
계속 작게 들려오는 문 두드리는 소리.

잠시 후.. “상우씨 상우씨 .. 나와봐”
상우는 잠결에 은수의 목소리를 듣는다.

문을 열면 은수가 상기된 표정으로 마루 끝에 앉아 있다..
은수 뒤로 함박눈이 펑 펑 내리고 있다.

은수 : 상우씨 지금 녹음할 수 있어 ?


32. 산사 마당. 새벽녘

부산하게 준비를 하고 있는 두 사람.
녹음을 하려는데 어젯밤 군불을 때주던 동승이 언제 일어났는지
이미 많이 쌓이기 시작한 눈을 쓸고 있다.

상우와 은수는 동승을 제지하지 않는다.
풍경소리 너머로 작게 눈 쓰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를 들어보고 좋다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은수.

눈 내리는 새벽 산사의 풍경들. 눈을 흠뻑 맞으며 녹음하는 두 사람.
눈을 감은 채 헤드폰을 양손으로 붙잡고 소리를 듣고 있는 상우.
그런 상우를 보고는 은수 자신도 눈을 감아본다.

풍경소리.. 눈 쓰는 빗질소리...가 들리다가
함박눈을 맞고 있는 마이크만 남겨두고,
소리들이 천천히 작아지다가 사라져버린다.

함박눈을 맞고 있는 마이크.


33. 요사채 마루 (아침)

방 앞 마루에 걸터앉아 있는 상우가
담벼락에 기대 풍경소리를 듣고 있다.

은수가 수첩에 뭔가를 적으며 상우 쪽으로 온다.
수첩을 가방에 넣고, 상우를 부른다.
꿈쩍도 않는 상우.
은수가 상우 얼굴 쪽으로 돌아본다.
상우, 자고 있다.
상우를 지긋이 바라보는 은수.
딸랑딸랑 풍경소리가 맑은 아침 햇살 속에 울린다.


34 은수집 앞. 해질녘

아직 하늘빛은 남은 시간녘, 은수네 아파트 단지
불이 하나밖에 안 들어오는 상우의 차가 다가온다.

은수 : 차 한잔 하고 갈래요 ?


35. 은수집 현관. 해질녁
은수 현관문을 열쇠로 열고 있다.

은수 : (문을 열고 들어가며)..좀 있다가 들어와요.

은수 먼저 들어간다.
남은 상우. 나그라를 어깨에 메고 계단에 서서 창 밖을 보고 있다.
항구의 야경.


36. 은수집.
마루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오디오와 tv.
그 주변에 옷들이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고
부엌 탁자에 앉아있는 상우와 은수.

각각의 앞에 찻잔이 놓여있다
상우에게 차를 따라주는 은수
쪼르르..소리가 난다.
상우 잔을 들어 마시며 주위를 둘러본다.
어색하게 앉은 두 사람


37. 은수방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은수방. 침대에서 혼자 자고 일어난 상우.
어젯밤 일을 생각하는지 잠시 가만히 있다가 옷을 본다.
이불을 들쳐보면 옷을 다 입고 있는 상우.
마루로 나와보면 술병들이 어지럽게 널려져 있다.

마루에서 대충 자리 펴고 자고 있는 은수
상우는 은수를 보다가 슬며시 은수 옆에 누워본다.
잠든 은수를 보고 있는데 은수 눈을 뜬다.
말없이 가만히 보다가 은수에게 입맞추는 상우. 은수 가만있다.
점차 진하게 애무하는 두 사람.
깊게 입맞추며 애무를 하는데 덜컥 멈추는 은수.
좀 떨어져 앉는다.

은수 : .좀 더 친해지면 하죠.
상우 : ......미안해요
은수 : 아냐... 내가 미안해..
상우 : ..
은수 : ....
상우 : ...저 갈께요 ..


38. 은수집 밖. 아침
길가에 세워둔 차 뒤로 항구가 보인다.
차고 맑은 겨울 햇살에 반짝이는 항구의 푸른 바다.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차에 오르는데 전화가 온다.

상우 : 여보세요.. ..(엷게 웃음이 지어지는 상우)

뒤를 돌아보면 창가에 서서 전화를 하며 손을 흔드는 은수가 보인다.


39 은수집 아침
녹음 장비에 전축 스피커에 연결하느라 애쓰고 있는 상우.
요란한 빗소리가 은수 집에 들린다.

상우 : 응 ..여기 지금 비온다니까요 ..낼 못 가. 아직도 절간에 처박혀 있다구.
응.. 일 끝나는대로 갈게.

전화를 끊고는 이래도 되나 싶은 표정의 상우.
은수가 웃고 있다.
녹음기 버튼을 누르면 조용해진다.

상우도 멋적게 은수에게 웃어준다.

은수 : 이거 리와인드 어떻게 해요 ?
상우 : ?
은수 : 나두 방송국에 전화해야지 ..
.....그럼 우리 이제 친해 진건가 ?


40. 문방구. 낮

나른한 봄 햇살이 비치는 상우네 문방구
아이들이 문방구 앞에 쪼그리고 앉아 오락을 하고 있다.
바글바글.... 집에가는 아이들이 뒤에 줄을 서서 구경하고 있다.
어느새 봄이 온 문방구의 풍경

상우가 나오더니 꼬마들을 조용히 시킨다.

상우 : (손을 입에 가져가며) 쉬~

라디오에서 노래자랑 프로그램이 진행 중인데 아버지의 이름이 나온다.
라디오를 좀 꺼달라는 라디오 방송 .. 아버지는 라디오를 안 끈다.
녹음하라는 아버지의 신호
상우가 녹음버튼을 살짝 누른다.

바짝 긴장하는 아버지. 상우도 아이들도 긴장한다.
늘 부르는 아버지의 애창곡의 반주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아버지 : 흠흠...

노래를 시작하면서 조금 박자를 놓치고 ..계속 박자가 늦는 아버지 ..

땡 ~

아쉬운 인사말과 함께 다른 사람에게 기회가 넘어간다.
너무나 아쉬워하는 아버지. 상우도 많이 아쉽다.
구경을 하고 있다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슬금슬금 빠져 나가는 아이들 ..
문방구 밖으로 나가더니 자기들 끼리 막 웃더니.
문방구를 향해 소리친다.

꼬마들 : 땡! 땡!

아버지, 길게 한숨이 나온다.


41. 커다란 사진샵. 낮
직원에게 필름 같은 걸 받는 상우.
조그만 박스를 열어보면 슬라이드 필름들이 들어있다.
그 중 하나를 골라 밝은 곳으로 대어 보는 상우.
다른 것도 한 장 집어서 자세히 들여다본다.


42 할머니방. 낮
할머니 방 벽에 확대되어 붙어있는 사진들.
앨범에서 보여드렸던 사진들이다.

찰칵 찰칵 사진이 보여진다.
그냥 맨벽에 모조지를 붙여만든 작은 스크린.
좀 낡은 환등기 불빛이 붙는 할머니와 상우의 얼굴
사진이 넘어갈 때마다 눈을 깜박이는 할머니.

상우 : 이건 아버지예요 ..제가 아니구요

할머니 알아듣겠다는 듯 끄덕끄덕 ..
이번엔 젊은 할아버지 사진을 보여주며

상우 : 그리구 이건 할아버지구요 ..
할머니 :....

할머니 말없이 사진을 보시더니 환한 사진 속으로 다가간다.
벽에 영사된 할아버지의 젊었을 적 사진을 곱게 만져보는 할머니.
손을 천천히 떼고 물끄러미 바라보신다.
옆에서 할머니와 같이 사진을 보는 상우


43. 마루. 낮
아버지가 tv를 보고 있다.
옆으로 길게 누워서 팔로 머리를 받치고 전국노래자랑을 보고 있는 아버지.
아버지 옆에 앉아 같이 tv를 보는 상우.
딩동댕 ~ 어느 참가자가 합격하자 너무 좋아하며 인사를 한다.

44 선배녹음실 낮
조금 오래된 느낌의 선배 녹음실.
지난번에 물레방아 소리를 섞어 넣은 선배가 있는 녹음실이다
촌스런 커텐도 달려있는 작고 네모난 유리너머 룸 안에는
쫙 빼 입은 아버지가 마이크 앞에 어정쩡하게 서 있다.

마이크를 한번 잡아 보더니 다시 차려 자세.

남자 : (마이크 버튼 누르고) 상우 아버님 제 말씀 들리시죠?

아버지가 손을 흔든다.

남자 : (마이크 버튼 누르고) 말씀 하셔도 들립니다.
아버지 : (스피커로 울리는 소리) 들립니다. 잘 들립니다.
남자 : 그럼 전주 나오면 녹음 합니다. 어떻게...조금만 해보실래요
아버지 : 그냥 해보죠...뭐...시간도 없는 분들인데..
남자 : 노래 소리 나오면 시작하면 됩니다.

전주가 나오고 아버지 노래 한다. 라디오 노래자랑에서 불렀던 그 곡이다.
너무 떨어서 첫 소절을 놓친다. 음정도 불안정. 노래 부르다 말고.

아버지 : (잔뜩 긴장해서는 손수건으로 이마에 땀을 닦으면서)
상우야 뭐 좀 손에 쥘 거 좀 가져와라 ..


상우 웃으면서 마이크를 가져다 드린다.
아버지, 마이크를 손에 쥐고 반주 없는 상태에서 몇 소절 부르더니,

아버지 : 아....저 이거 커텐치고 하면 안되나요.
...

커텐이 쳐진 주조실.
아버지는 커텐을 쳐 놓고도 이상한지 아예 뒤로 돌아서서 노래한다.
선배와 상우 웃으면서 아버지의 노래를 듣고 있다.


45. 술집 밤
상우, 거리에 나와 전화를 하고 있다.
유리창 창 너머, 빨리 들어오라고 하는 선배에게 알았다고 손짓하는 상우

상우 : 지금 ? 지금 좀 그런데 술을 마셔서 차를 못 가져가는데
...아니다 갈게.. 응 ....알았어. 아니 갈 수 있을 것 같애

상우는 흔들흔들 거리며 길가에 서서 은수랑 전화를 하고 있다


46. 거리 밤
얼굴이 발갛게 된 상우가 거리에 서 있다. 택시 한 대가 상우 앞에 선다.
머리를 들고 눈을 간신히 뜨고 택시를 보더니 이내 타는 상우
상우를 보고 웃는 택시 기사.

상우 : 아저씨 강릉!
운전사 : 뭐야...
상우 : 강릉...몰라 강릉?
운전사 : 이 새끼 취했냐 ? 또 어쩌자고 ~

상우 : (운전사에 엉기며) 야...가줘라...부탁이다. 친구야....

웃어버리는 운전사.
상우의 친구 정국이다.


47. 고속도로 밤
운전중인 정국. 옆에서 졸고 있는 상우
자기도 졸린지 눈을 부비며 상우를 보고 웃는다.
강릉 78km 라고 써있는 표지판을 지나는 택시


48. 아파트 밤
정국의 택시가 은수의 아파트 앞에 선다. 상우 내린다.
조금 걸어가면 구석에 은수의 모습이 보인다.

집안에서 입는 얇은 옷을 입고 겉에 외투만 걸친 모습으로.
간간이 걸음을 옮기던 은수. 상우를 보더니 발걸음이 멈춘다.

은수에게 똑바로 걸어가는 상우. 은수를 안는다.
정국, 클락션을 한번 꽝 누르고 떠난다.

정국을 보는 두 사람.
정국은 떠나며 손을 흔들어 준다.


49. 강릉 어느 공원 낮
어느 한가한 일요일 풍경.

데이트를 하는 상우 은수
벤치에 기대어 앉은 두 사람.

만개한 봄을 느끼고 있다.


50. 상우 집 새벽녘
동이 트기 전 어둠컴컴한 상우집 마당

출장 가는 차림으로 마당으로 내려선 상우 신발을 신으려는데 신발이 보이지 않는다.
답답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할머니 방으로 간다.

할머니 방에서 신발을 가지고 나오는 상우

 

51. 국도 낮

길이 두 사람에게 다가온다. 차창 밖 풍경들 ..
구불구불 언덕도 있고 사라졌다가는 다시 나타나는 상우의 차.
상우의 차가 기어간다. 삐뚤빼뚤..
상우 운전석에 앉아 있고, 은수가 상우 무릎에 앉아 핸들을 잡은 상우 손 위를 잡고 있다.

은수 : 할만한데..
상우 : 아...너무 크게 돌지 말라니까..아...발은 내가 할게 밟지마요.
은수 : 차선 보고 운전하나? 아님 뭐 봐?
상우: 주로 앞차를 보지...땅 보면서 어떻게 운전을 해...큰 일 나게..
은수 : 면허 따고 차를 몰아본적이 있어야지..

마주 오는 차를 보자, 은수가 머리를 옆으로 젖힌다.
순간 차가 옆으로 확 몰린다.

상우 : 아..차 오면 머리 좀 숙여요.

하는데, 또 차가 온다. 상우가 은수의 머리를 손으로 누른다.

은수 : 아!-


52. 강원도 어느 강가 낮

강가에 장비를 부려놓는 상우와 은수.
자리를 찾고 장비를 세팅하는데 멀리 들리는 관악기 소리들
보면, 저 쪽 강둑에서 고등학생 밴드부 아이들이 연습을 시작한다.

상우 : (큰 소리로) 야 너네들 거 좀 있다 하면 안되니 ?


조금 멀리서 연습하던 아이들 무슨 소리인가 하더니 ..슬금슬금 다가온다.
바로 옆에 와서 더 크게 연습하는 아이들 ..
신나는 음악으로 ..

아이들 : (상우를 보며) 방송국에서 나왔어요 ? 아저씨 우리도 녹음해줘요.
상우 : 야 너네 조금만 기다려 ..우리 금방 끝나
아이들 : (이번엔 은수를 보며)예쁜 누나. 출연료 안 받을께요 네 ? 우리 잘해요 ..
은수 : 어떡하지 ?

상우 : ...해주고 보내자 ..으이그 자식들
은수 : (작게) 테잎 모자란단 말야.
상우 : 어 ~ ... 에이 그냥 하는 척만 해주지 뭐 ..

시간경과

멀리서 연주하는 아이들 소리를 따는 상우와 은수 ..
트럼펫 소리가 강가에 울려 퍼진다


53. 같은 강가 (해질녘)
물이 와서 닿는 호숫가에 마이크들이 4개 나란히 놓여져 있다.
작게 들려오는 강가에 물 닿는 소리.

파랗게 물이 오른 호숫가
몇몇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호수 옆으로 빨갛게 철쭉이 한창이고
봄나물을 바구니를 든 아줌마들이 상우네를 구경하면서 다리를 건너간다.

상우의 어깨에 기댄 은수.

은수 : 상우씨 죽을 때 기억 하나만 가져가라고 하면 뭐 가져갈거야 ?
상우 : ....글쎄...
은수 : 나 ?

웃는 두 사람.
은수는 강쪽에 나가 마이크 위치를 조정하고 있다.
상우를 돌아보면 좋다는 상우. 됐다고 신호해준다
호수가에 앉아 석양에 붉게 물드는 은수

헤드폰을 쓰고 소리를 듣던 상우.
헤드폰을 벗는다. 다시 써본다.
다시 벗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는데
헤드폰을 통해 들려오는 은수의 노랫소리.
아까 아이들이 연주하던 음악이다.

상우 마이크를 은수 쪽으로 돌려본다.
은수의 콧노래 소리 약간 커진다.

녹음기의 스위치를 누르는 상우. 녹음 테이프가 돌아간다.


54 상우집 낮
마루에 고모와 어느 낯선 할머니가 마주 보고 있다
마당에 서서 눈을 훔치는 할머니

둘째 할머니 : 건강하시라고 ..미안하다고 전해 주세요
고모 : (덤덤한 표정 그렇지만 안쓰럽다) ...네

할머니 방 앞에서 할머니를 부르고 있는 아버지.

아버지 : 어머니 ~ 어머니 ~ (타이르듯) 어머니 문 좀 열어보세요 ..

마당에 서 있다가 뒤돌아서서 나가는 작은 할머니와 들어오는 상우가 부딪친다.
나가는 할머니를 보는 상우

상우 : 누구야 ?

고모 : 알잖아 할아버지 이거 (새끼손가락을 내보이며)
매년 이맘때만 되면 - 이런 걸 가져온다. 미안하다면서 ..

마루에 보약 한재가 놓여있다

55. 할머니방. 낮
할머니 앞에 좀 나이 들어 40대처럼 보이는 할아버지의 사진이 찢어져 있다.
할머니는 젊은 할아버지의 사진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문 너머에서 아버지는 할머니를 부르고 있다

아버지 : 어머니 ~
고모 : 엄마 문 좀 열어봐. 작은 할머니 갔어 ..

문이 열리며 할머니가 나오신다.

할머니 : 할아버지 어디 가셨니 ?


56. 결혼식 낮

은수 , 사촌언니 결혼식. 유난히 아이들이 많다.
신랑이 선생님이다.
신랑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는 은수 .

은수 : 언니 축하해요...

축가를 부르는 시간. 여학생들이 줄을 서서 입장.
갑돌이와 갑순이는 한마을에 살았드래요-를 개사해서 장난스럽게 부른다.
사람들이 모두 웃는다.

사진사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신랑 신부.
신부가 부케를 던지기 전에, 부케를 비스듬히 들고는 방긋 웃는다.
찰칵- 사진이 찍힌다.

유난히 행복해 하는 신부를 보고 선 은수.
신부와 눈이 마주치자 웃어보인다.


57. 식장 밖 낮
상우가 차를 세워놓고 기다리고 있다
은수가 나온다.

하객들에게 둘러 쌓인 신부와 신랑.
그 중에 은수도 있다.

사람들과 어울려 상우차를 그냥 지나쳐 가는 은수.


58. 은수 집 낮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상우
리모콘을 가지고 이리저리 돌리다가, 아래를 본다
은수는 마루 바닥에 앉아 집게로 다리털을 뽑고 있다

상우 : 왜 아는 척을 안해 ?...
은수 : 머가 ?
상우 : 나 만나는거 챙피해 ?
은수 : ..아야~ (돌아보면서)
상우 : .....
은수 : 사람들이 알면 너 짤려 ..
상우 : .....
은수 : ... 짤리면 만나지도 못하잖아. 미안해~
상우 : ..... 배고프다 우리 라면 끓여먹자..
은수 : 끓여줄거야 ?
상우 : 그래.. 내가 할게..(웃으면서) 하던거 마저 해 ..


59 방송국 낮
창문 너머로 마이크와 진행자 테이블이 보인다.
초대손님으로 보이는 남자가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
테이블에서 김밥을 급하게 먹고 있는 은수.
은수 김밥 남은 거 하나 다 먹고, 물 마신다.

안에 앉아있는 남자 은수를 보고 웃는다.
은수도 웃어준다

은수, 옆에 놓인 CD케이스에서 CD한 장 꺼내더니,
거울삼아 이빨을 들여다보고 머리도 다듬는다.

화장도 좀 고치는 은수
안에서 초대손님과 웃으며 인사한다.


60. 속옷가게 낮
남자 속옷코너에서 은수가 물건을 고르고 있다.
이것 저것 고르다가 맘에 드는 것을 골랐는지
트렁크형의 팬티를 들고 사이즈를 본다.
점원에게 물어보는 은수

은수 : 이걸로 좀 큰거 있어요 ? 이건 중간 사이즈네.
하나만 더 큰 걸로 주세요 ..두장 주세요.


61. 은수집 낮
현관이 열리고 은수가 들어온다
팬티만 입고 있는 상우. 라면을 먹으면서 tv를 보고 있다

은수 : 하루종일 그렇게 있었어 ?
상우 : 응 그거 뭐야..?
은수 : ... 아냐 몰라도 돼 암것도 아냐
상우 : 뭔데 ..
은수 : 암것도 아냐 몰라도 돼 ..

상우 방으로 들어가는 은수를 보다가 다시 리모콘을 돌린다.
방안에 서서 사 온 속옷박스를 보고 있는 은수.
잠시 생각하더니 서랍 깊숙히 넣어둔다

62. 바닷가. 낮
은수가 차안에 앉아있다
상우가 해변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장비를 준비하는 상우를 물끄러미 보며 상념에 잠긴 은수
그렇게 한참 보고 있더니 고개를 떨어뜨린다.

- 시간경과

아직은 사람이 없는 한가로운 해변. 몇몇 연인들만 몇몇 눈에 띈다.
은수가 녹음기를 만지며 장난을 친다.
헤드폰을 쓰고 나란히 앉은 두 사람
파도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한다. 장난치다가 확 줄여버리는 은수.

파도도 소리가 없이 하얀 거품만 일고
거니는 연인들도, 자기를 바라보는 상우도 조금 낯설다.


63. 어머니 산소. 낮
상우의 차가 한적한 길에 서 있다.
산소 옆에 앉은 두 사람. 겨울을 난 잔디가 파랗게 올라오는 중이다
아버지의 이름도 써있는 비석을 쓰다듬는 아버지.

상우 : 엄마 돌아가실 때 나이랑 제 나이랑 비슷하네요
아버지 : 그러냐...니 엄마는 아직두 스물 일곱 살인데 ,
........ 젊은 여자 데리고 사는 것 같아서 좋아 난..
(산소에 대고) 미안해 이 자식 때문에 하루 늦었어
상우 : ...
아버지 : 추운데 이 안에 어떻게 들어가냐 ? 난 아직도 니 엄마가 많이 생각난다.
이상하지.....노래 부를 땐 생각이 안 난단 말야.

담배한대를 피워무는 아버지

아버지 : 요즘 사귀는 사람 있는 것 같던데....
집에 한번 데려와 봐.....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결혼 해야지.
상우 : 네


64. 상우 집 해질녘
안방에 모여 앉아 고스톱 치는 고모와 동네 아줌마들.
지금 돌아온 아버지가 방문을 열고 들여다본다.

아버지 : 어머니는 ..
고모 : 응 ? 저기 방에 계시잖아
아버지 : 어느 방에 ...
고모 : 아 저기 ..
아버지 : (소리가 커진다) 어느 방에?
고모 : 아 가만 있어봐. 오빠는 지금 중요한때에 ..
아버지 : 다 집어치우지 못해 ? 빨리 .. 어머니 방에 안 계시잖아 지금!!~

간이 떨어질 듯 놀래는 고모와 동네 아줌마들.

차를 세우고 들어오는 상우. 집안 분위기가 좀 이상하고 아줌마들이 우르르 몰려나간다.

아버지 : 할머니가 없어지셨다.

부랴부랴 나서는 아버지와 고모. 아줌마들..
상우도 따라 나선다.


65. 파출소 밤
파출소 문을 기웃거리며 들어오는 아버지와 고모. 그리고 상우.
할머니가 난로 옆에 앉아 아버지와 고모를 기다리고 있다. 아버지를 멍하니 쳐다보는 할머니.

순경 : 가족분들 되세요? 저 할머니 기찻길에 서 계신걸 모셔왔습니다
저.. 할머니가 자꾸 수색역을 가시겠다는데
거기 어디 연고가 있으신가요 ? 연락을 해봐도 그쪽 사람들도 모른다고 하고
...가족들이 신경 좀 쓰셔야 할 것 같습니다. 모셔 가세요.

할머니는 자꾸 역에 나가야 한다고 하신다.
아버지는 그 순경에게 코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하고..
고모가 할머니를 살며시 끌어안는다.

고모 : (할머니를 안으며) 엄마..미안해.


66. 상우집 마루. 밤
말없이 앉아있는 아버지 고모.. 상우
아버지 고개를 숙이고 있다
담배를 꺼내는 아버지.

고모 : ..어쩌면 그게 엄마한테 더 좋은걸 수도 있어.. 오빠
아버지 : ...
고모 : 나 일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그렇게 하는게 ...
엄마땜에 아무것도 못하잖아.. 나보구 이렇게 계속 있으라구..

아버지 : ...
상우 : ...


67. 잔치

할머니의 잔칫상이 뒤에 놓여있고 시끌시끌한 잔치 풍경..
할머니 주위에 친구분들이 여럿 앉아계신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분들.

어느 분은 정신을 놓은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할머니의 얼굴을 지긋이 보는 분도 계시고.
어느 분은 아예 손수건을 꺼내서 “오래 살 필요 없다”며 눈물을 닦아내고 계신다.

할머니 친구분 중에 한 분이 상우 할머니를 부축하고 앞으로 나오신다.
천천히 걸어나오시더니 반주도 없이 노래를 시작하신다.


“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흩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다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

노래가 진행됨에 따라 눈물을 보이시는 할머니 친구 분들. 분위기가 좀 숙연해 진다.
조금씩 따라부르는 할머니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입가엔 엷은 웃음이 감돌고
눈가가 조금 젖어 드신다.

이미 술에 취한 상우 아버지는 할머니 뒤편에서 “우리 엄마 왜 이렇게 늙어 버렸냐” 며
고모를 붙잡고 주정을 해댄다
아는지 모르는지 지들끼리 돌아다니며 떠드는 아이들.
맛있는 코너 앞에 줄을 지어 늘어선 사람들.


68. 국도 낮

차 그림자가 길게 떨어지는 오후 3-4시의 나른한 오후 햇살.
상우의 차 앞에 이삿짐을 실은 트럭이 달린다.
이삿짐 한 가운데 엄마에 안긴 채 실려 가는 꼬마.
짐을 덮어놓은 담요자락이 바람이 펄럭이는데 그 사이로 상우와 꼬마의 눈이 마주친다.
웃어주는 꼬마. 꼬마도 웃으면서 엄마한테 숨는다.

앞에 가는 트럭과 갈림길에서 멀어진다.
가물가물 멀어지는 이삿짐 트럭.
상우옆에 앉은 아버지는 창 밖을 내다보고 있고 ..
뒷좌석에 고모 할머니도 조용하다
상우의 시선이 멀리까지 그 트럭을 따라간다.

요양원으로 들어가는 상우차


69. 상우집 마루. 낮

집에 돌아온 상우. 집안을 두리번 거린다.
조용한 집안

아버지 방문을 열어보는 상우
아버지는 소주를 기울이고 있다.
다녀왔다고 인사하는 상우에게 됐다고 손짓하는 아버지
문을 살짝 닫는 상우


70. 은수 집 앞 (저녁)

상우의 차가 아파트 단지로 들어온다.
차 앞에 은수집을 올려다 보는 상우. 불이 꺼져있다.
핸드폰을 연다.


상우 : (장난스럽게) 나야 .. 지금 갈게 ..
은수 : (막 잠에서 깬 듯한 목소리) 지금 몇 시야?

은수 방에 스탠드 불이 켜진다.
상우, 계속 올려다 본다.

은수 : (목소리만)몇 시야..아....나..
그냥 잘래. 아침에 일 나가야지...
상우 : 갈게.~
은수 : 그냥 자자. 응 ? 나 아침에 일찍 나가야 돼 .. 낼 바쁘단 말야.. 좀 자야지.
오지마 ..나 좀 봐줘..상우씨 오면 또 못자잖아..
상우 : 그래 그럼..

핸드폰을 닫는 상우. 차를 몰고 가다가 차를 세운다.
차에서 내려 담배 한 대를 피운다.

핸드폰을 열었다가 다시 닫는다. 다시 핸드폰을 열고 번호를 누른다.

은수 : 왜 또 ...
상우 : 나 사실은 집 앞이거든 ?
은수 : ....그냥 잠만 자는거다 ..그럼 ..


71. 은수 집 낮

탁자 앞에 앉아있는 상우. 은수는 가스불 앞에서 라면을 그릇에 담고 있다
두 사람 다 옷을 입는 둥 마는 둥 대충 걸치고 있다.

상우 : 엄마 돌아가시고 아버지한테 죽어라고 맞은 적이 있었는데..
내가 엄마엄마 하며 울더래. 그 후론 한 번도 안 때렸대.

은수 : ...(말없이 상우를 보는)..

그릇을 가지고 탁자 앞에 앉는 은수. 김치가 없자 냉장고에 김치를 꺼내러 간다.
상우가 물도 가져오라고 한다. 물도 가져오는 은수. 그 중간 중간 들려오는 상우얘기..

상우 : 우리 아버지가 ... 사귀는 여자친구 있으면 한번 데려오라는데...
은수 : ...(라면만 먹는다)
상우 : .... 싫어?
은수 : ....
상우 : ...
은수 : 상우씨 ....
상우 : ...
은수 : 난 결혼 다시 안할꺼야.
.......미안해.
더 좋은 여자 만나서 결혼해야지.

 

 

72. 은수 방송국 복도. 밤

복도 의자에 앉아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은수
외투를 입고 있다.

옆에 자판기가 서 있고. 그 옆에는 소화기
커피를 뽑다가 소화기에 눈이 간다.
옆문이 열리고 지난번 초대손님으로 왔던 남자가 나온다.

남자 : 어~ 여기서 뭐해요 ?
은수 : 응...다른 프로 녹음하셨나봐요.
남자 : 예...
은수 : ...
남자 : 저녁같이 먹을래요 ?
은수 : 소화기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아요 ?
남자 : 네 ?
은수 : 아니에요
남자 : 저녁같이 먹을래요 ?


73. 은수집 밤

벨이 울리고 노크도 하고..그러더니 딸각딸각 문이 열린다
상우가 안 가고 있다.

은수 : 어 안 갔네?

은수는 술을 먹었는지 얼굴이 발그레하다.
방으로 들어가더니, 그대로 옷을 벗고는 침대로 들어가는 은수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돌아눕는다.

상우 : ...왜 안 씻고 자.. 씻어
은수 : 싫어... 아침에 씻었어...
상우 : 씻구자
은수 : .......싫어. 귀찮아..
옆에서 자기 싫으면 소파에서 자. 상우씨. .........미안해.


74. 국도 낮
쓸쓸한 아우라지 강변을 따라 달려가는 상우의 차.
은수와 상우는 좀처럼 말이 없다.

은수 : 잠깐만 상우씨 ..

아주머니 한 분이 간이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
차를 세우고 길을 물어보는 은수.

은수 : 저희가 유현리로 가는데요..

 

75. 삼거리 낮
작은 삼거리가 나오자 상우가 차를 세운다.
뒷자리에 탄 아주머니 밖을 유심히 보고 있다.

아주머니 : 여기 맞는데. 잘 모르겠네.

오른쪽으로 가는 상우의 차.
잠시 후 다시 돌아오는 상우의 차.

아주머니 : 30년만에 왔더니 잘 모르겠어. 그땐 참 재밌게 지냈는데.
교장선생님이 냇가에서 잡은거라며 매운탕을 끓여가지고
수업시간에도 들어오고 그랬어. 아이들하고 같이 먹고 그랬는데.
선생님들끼리 죽이 잘 맞아서 매일 놀러다니고..

아주머니는 그때 시절이 눈앞에 선하다는 듯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은수 : 지금 가시면 누구 아는분이라도 계신가요 ?
아주머니 : (조금 기대에 찬 얼굴이다) 글쎄 그건 가 봐야 알지.


76 학교 해질녘
수업이 끝난 학교 운동장.
낡았지만 작고 아름다운 학교.

교실 한쪽에 아이들이 키를 재며 줄을 그어놓은 곳을 발견하는 은수.
뒤돌아 자기의 키를 재본다.
그런 은수를 창 너머로 지켜보는 상우

운동장 쪽 현관 앞에 매달린 작은 종이 녹슬어 있다.
동네 아이들과 낡은 종소리를 녹음하는 상우
창 너머로 상우를 보는 은수.

학교 정문에는 아까 그 아주머니가 누군가 기다리고 서 있고
초로의 신사가 아주머니에게 다가간다
조금 거리를 두고 인사를 나누는 두 사람.

해질녁 햇살을 받으며 서 있는 초로의 연인들.
가만히 서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77 국도. 해질녘
해질 녘의 시골풍경

은수 : 뭐 다른 일 좀 더 찾아봐야겠다.
이 일도 거의 다 끝나가는데 ..
상우 : 무슨 말이야 ?
은수 : (창밖을 보면서) 그냥 끝나간다구 ..
상우 : ......

 

78. 동해안 어느 소도시 버스 터미널 밤
상우의 차가 버스 터미널을 지난다.
차를 세우는 상우

상우 : 나 어디 갈 데가 있거든 ..
은수 : ?
상우 : ..여기서 내릴래 ?
은수 : ...(상우를 보다가) 그래...

은수가 내린다.
낯선 길가에 은수를 세워두고 떠나는 상우차
상우차를 바라보는 은수.


79 극장 앞 매표소
사람이 없는 극장 매표구
혼자 표를 사는 상우


80. 극장 안
어두운 공간에 들어가 눈에 익지 않는 상우
헤맨다 .. 겨우 자리를 잡고 영화를 보는 상우.


81 은수집. 밤
은수는 베란다에서 빨래를 걷는다.
빨래를 아무렇지도 않게 걷어 내고는 방으로 들어간다.
마루에 던져져 있는 빨래들
은수 방에서 다시 나와서 하나하나 차근차근 개기 시작한다.


82 은수집 밤
계단을 올라오는 상우.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와서 열쇠를 신발장 위에 놓고 신발을 벗는데
현관 신발장 위에 차곡차곡 개어있는 상우의 속옷들이 보인다.
그 아래에는 나머지 상우 가방이랑 상우의 물건들.
신발을 신은 채로 안방 문을 열어보는 상우. 은수는 자고 있다.
싱크대 수도에 물을 잠그지 않은 소리들.
뚜벅뚜벅 걸어가서 싱크대 물을 콱 틀어 잠근다.
조용해진다. 나가는 상우.


83 계단 밤
계단 앞에 가만히 서 있는 상우.
주머니를 툭툭 쳐본다. 다시 돌아간다.
현관문을 그냥 열더니 신발장 위에 있는 자동차 열쇠를 집어 가는 상우.


84 은수방 밤
은수 가만히 눈을 뜨고 상우가 나가는 문소리를 듣는다.


85 국도 밤
불이 하나밖에 안 들어오는 상우차가 국도를 달린다.
창을 내리면 바람이 밀려들어온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은수의 방송
들렸다 안 들렸다 한다.
꺼버리는 상우

86. 상우 녹음실
바쁘게 일하고 있는 상우.
더운지 연신 목에 흐르는 땀을 닦아낸다.
옆에 놓인 핸드폰이 울린다.
한참을 울린 후에야 받아드는 상우.
바쁜 목소리다

상우 : 어디예요. 집이면 내가 다시 걸께요.

전화를 끊고 나가는 상우


87. 녹음실 밖. 해질녘

더위가 한 풀 꺾인 해질녘의 거리에 은수가 서 있다.

상우 : ......
은수 : 화났어 ?.
상우 : ....
은수 : 그냥...보고 싶어서 왔어. 나랑 커피 한잔만 마시고 가. 저기서 ..

녹음실 밖 한 구석 은수가 가리키는 곳을 보면 자판기가 서있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는 상우.
그런 상우를 은수가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눈가에 물기가 묻는다.
나란히 길가에 서서 커피를 마시는 상우와 은수

종이컵을 입에 물고 은수의 옷자락을 만져주는 상우
은수는 가만있다.

은수 : 내가 오니까 좋아 ?
상우 : ..........(끄덕끄덕)

상우의 전화가 울린다. 아쉬운 듯 돌아서는 상우.

은수 : 상우씨

상우의 소매 끝을 살짝 붙잡고 끌고 가는 은수. 어두운 곳으로 끌려가는 상우.
골목 한 귀퉁이에서 상우를 세워놓고 입맞추는 은수.

 


88 버스 터미널 대합실. 밤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상우와 은수.
은수 터미널에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

은수 : (문득..앞을 보면서) 상우씨.
우리 친구로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애.
상우 : ...나 싫어 ?
은수 : 아니 좋아.
상우 : 근데 왜 ..?
은수 : 우리 첨 만났을 땐 참 좋았는데 그치 ?

표를 들고 일어나는 은수.

상우 : 내가 데려다 줄게.
은수 : 혼자 갈게 그냥
상우 : 데려다 줄게..


89 국도. 밤
앞으로 뒤로 차가 한대도 지나지 않는 밤길 국도.
멀리 상우의 차가 보인다.
아주 간간이 지나는 맞은편 차량의 불빛만 묻어날 뿐 조용하다
잠들어 있는 은수. 옆에서 별 하나가 상우의 차를 따라온다.

힐끔힐끔 쳐다보는 상우.

차를 길가에 대는 상우.
창문을 조금 내리고 에어콘의 방향을 발쪽으로 바꾸어 준다.

차에서 내려 담배 한대를 꺼내 물고 근처 풀섶으로 간다.
오줌을 누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쏟아질듯 많은 별들이 상우를 내려다보고 있다.


90. 은수 방. 밤

침대에 누워 있는 두 사람.
상우와 은수 약간 돌리고 잠을 청하고 있다.

상우 : 자..?
은수 : 아니
상우 : .......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은수 : 그런 건 아니야....
상우 : ...
은수 : 우리...한달 정도만 만나지 말아볼까 ?
상우 : ...헤어지잔 얘기야 ?
은수 : 모르겠어

 

91. 요양원 낮

요양원 앞에 서 있는 상우차.

할머니와 앉아계신 아버지
할머니의 얼굴을 못보고 고개를 숙이고 계신 아버지.

할머니 : 집은 괜찮지 ? 상우는 잘 있니 ?
....난 괜찮다.
................난 걱정말구 ..가서 잘 살어..
아버지 ...


시간경과 -

창밖으로 상우의 차가 보인다.
상우도 차 뒤에서 담배를 피고 있다.

복도 끝에 앉아 있는 아버지.
할머니 아버지에게 다가온다.

할머니 : 아범아... 나 가만있을게 .. 나 데려가라..
나 가만있을게 .. 나 데려가..
.....
아버지 : ....
할머니 : ....안돼 ? 그냥 여기 있어 ...?


92. 상우방 저녁
상우가 방 청소를 하고 있다.
이것저것 쌓여있는 벽장에서 필요 없는 물건들을 골라내고 있다.
먼지도 쓸어내고 ..방도 닦고 ..

방바닥에 돌아다니는 핸드폰..
걸리적거리는 핸드폰을 책상위에 올려 놓는다.
빗질을 하다가 다시 와서 전화기를 보는 상우
전화를 건다.

상우 : 나야.
은수 : ....
상우 : ... 그냥 걸었어..
은수 : 나 지금 좀 바쁘거든 ..내가 좀 있다 걸게 ..
상우 : ...그래 ..

“상우야 밥먹어라”


93. 마루 저녁

식구들이 다 모여 밥을 먹고 있다.
할머니는 얌전히 앉아계신다.

아버지 : 상우야 사귀는 친구 있으면 데려오라니까. 왜.. 없어 ?
없는 거야 안데려 오는 거야 ?

고모가 아버지에게 눈치를 준다

고모 : ... 애 밥먹는데 ...오빠는..그냥 두세요.
아버지 : 뭘 그냥 내 버려둬 .. 내버려두긴 ..무슨 죄 졌어?
상우 : ....

아버지 : 한번 오라 그래.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엔 결혼해야 할 것 아냐.
결혼이 너 혼자하는 것두 아니구 ... 한번 보자 ..
고모 : 그래 한번 데려와 봐 상우야
상우 : (고모를 쳐다보며 왜 고모까지 그러냐는 듯) ...~

할머니는 아무런 말없이 식구들의 얘기를 듣고 있다.
상우를 물끄러미 보던 할머니, 김치를 손으로 집어 먹는다.

고모 : 엄마..그러지 말라니까 .. 참

할머니 손을 붙잡아 닦아주는 고모.
상우 일어나 방으로 들어간다.

아버지 : 어딜가 ..이리와.. 밥 안먹어 ?

“ 네..생각 없어요.. 나중에 먹을께요.. ”


94. 상우집 (밤)
아버지는 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더니.. 상우를 부른다.

아버지 : 상우야 자니 ? ~
...
상우야 .. ~

대답이 없더니 .문이 열리고 상우가 나온다
아버지 : 너 이리로 좀 와 봐라. 여기 좀 앉아봐....
요새 뭐 안 좋은 일 있니 ?
상우 : ....
아버지 : (담배한대를 피워문다) 아버지랑 술 한 잔 할래 ?
상우 : 아뇨 ..됐어요.
아버지 : 그래 .. 먹기 싫은 술 먹으면 안되지 ..

아버지 전축에 CD를 넣으신다.

아버지 : 내가 좋은 노래하나 들려줄까 ..신나는 걸로 ?
술 먹기 싫으면 아버지랑 춤이나 한번 추자 어때 ..
상우 : (뜨악한 표정이 돼서 실소를 짓는다) ...
아버지 : 자식이 웃기는 ..

 

아버지 상우의 손을 붙잡고 춤을 추신다.
보기보다 춤을 잘 추는 아버지.

무슨 일인가 싶어서 문이 열리고 고모가 부시시 나온다.
할머니도 빼꼼히 쳐다보신다.
춤추는 부자를 보더니 “어머 어머” 하며 웃기 시작한다.

불켜진 마루 창안에서 난데없이 춤판이 벌어진 상우집.
마당 베란다 기둥에 매어진, 불이 환한 모기 잡는 통 근처에는 모기들이 왱왱...


95 포장마차 밤

옆 사람과 상우가 얘기하고 있다.
옆 사람과 안주를 하나 놓고 사이좋게 술을 마시는 상우
상우 : 그게 아니라니까.
남자 : 아니긴 ..그걸 꼭 찍어 먹어봐야 맛을 아니 ? 너 여자를 꼭 맛을 보야 맛을 아냐구 ~ ..응 ~ ?
나두 그런 거 많이 겪었다.
상우 : (한번 쳐다보고) 아냐 ..
남자 : 아니긴 .. 순진하구나 너.. 마 인생을 살다보면 다 그런 거야 ..그런 일도 있어야 살만하지 않겠어 ?
깨끗하게 잊어. 임마. 그 기집애 남자 생긴 거 맞아..잊어.
술값은 니가 내라. 상담료 낸 걸로 하고 응 ? 나 간다.. ..
너 담에 여기서 만날 때 또 그러고 있으면 아주 죽어 나한테 ..알았지 ?

남자 나가고 가만히 듣고 있다 생각하는 상우
술 한 잔을 들이킨다.

상우 : 저 씹새끼~ ..거기 안서 새끼야 ..

쫓아 나간 상우 주먹다짐을 한다.
아저씨가 뛰어나가 말린다.

주인 아저씨 : 아니 모르는 사람들끼리 사이좋게 술 마시다 왜 이래 ..?
응 ? 아니 왜 이래 ..


96 방송국 밤

방송국 앞에서 차를 세워놓고 기다리는 상우.
담배를 피며 왔다갔다하고 있다

다시 차에 타고 있는 상우. 저 앞에 은수가 초대손님으로 왔던 남자하고 얘기를 나누며 나온다.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즐겁게 웃으면서 나오는 은수
같은 차를 타는 두 사람.
상우 보고 있다가 자기 차에 시동을 건다.

방송국을 빠져 나오는 은수차.

상우 따라간다.


조금 따라가다가 멈추는 상우의 차.
가만히 앞서가는 차를 보다가 거울을 들여다본다.
고개를 숙이는 상우.


97. 은수집 (밤)
은수집 현관이 딸그락 딸그락 거린다.
열리다가 덜컥 고리에 걸리는 현관문.

상우 : (취한 목소리) 문열어 ...

잠시 있다가 은수 나타난다.
고리를 풀어 문을 열어주고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은수.

상우는 은수의 시선을 피하면서 집으로 들어온다.
방으로 들어가는 상우.

곧이어 상우가 우는 소리가 방안에서 들려온다.
표정 없이 가만히 소파에 앉아있는 은수
서럽게 우는 상우. “엉엉” 운다.


98 은수집 앞. 낮
아침부터 날씨가 무척 덥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정거장에서 좀 떨어진 그늘로 모두 피해 있다
작은 양산을 쓰고 버스를 기다리는 은수.
옆에 서 있는 상우

상우 : 데려다 줄게 ..
은수 : 아냐 그냥 버스타고 갈게 ..
상우 : 내가 어제 실수한거 없지 ?
은수 : 응 실수한거 없어 ..걱정 하지마 ..너무
상우 : 나 기억이 안나거든 .. 내가 혹시 실수한거 있다면 미안하다..

노란 버스가 보인다.
사람들 그늘에서 나올 생각도 안하고 버스가 코앞까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버스가 와서 선다.
천천히 버스 쪽으로 걸어가는 은수의 양산.

버스를 탄다.
멀어지는 버스를 보고 서 있는 상우


99. 버스안 낮

창 밖의 상우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는 은수.
사람이 많지 않은 차 안 ..
동네 사람 몇몇만 타고 있다.


은수의 얼굴 뒤로 멀어지는 상우

은수 : (버스기사를 향해) 아저씨 잠깐만요

버스가 서면 은수가 내린다
또박또박 상우에게 걸어가는 은수


100. 상우차 안.. 낮
은수 : ................. 나 ..정말 점점 부담스러워져.
상우 : ...잘할게 ..
은수 : 내가 자신이 없어.
자꾸 상우씨한테 함부로 하는 것 같애..
자꾸 미안해지는 것도 싫구...
상우 : ..... 다른 남자 생겼어?
은수 : ....
상우 : .....
그 사람이랑 잤니 ?
은수 : .......
은수 : ......
상우 : ...미안해 ..
은수 : ... 아냐 내가 미안해
상우 : .. 너 나 사랑하니
은수 : ....그냥 그냥 친구로 지내면 안될까 ..
상우 : 나 사랑 하냐구...
은수 : .... 아닌 것 같애 ..
상우 : ..........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
너 나 사랑한다고 했었지. 근데 어떻게 지금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지 ?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말이 돼 ?
난 그런 거 이해할 수가 없어
....... 안되겠니 ?
은수 : 응.... 미안해.
상우 : ....미안하다...~ ..그래 미안하겠지.
뭐가 미안한지 모르면서도 미안하겠지..그래..그러겠지.
그래 헤어지자....... 잘됐어 ... 참 열쇠줘야지 ..

열쇠를 뒤지는 상우 계속 뒤진다..

상우 : ...........미안하단 얘기 참 듣기 싫었어.
....그 얘기 이제 안 듣겠네...

키를 건네는 상우.
상우를 쳐다보던 은수 내린다.
뒤도 안 돌아보고 차를 출발시킨다.

차가 단지 앞을 빠져 나갈 때까지 바라보는 은수

 

101. 은수집. 낮

따뜻한 햇볕이 드는 은수집 창가

cd를 뜯고 있는 은수
손톱으로 비닐을 벗기려고 하는 데 잘 안된다.
이러 뜯고 저리 뜯고... 잘 안 뜯어진다.

창 너머에서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들려온다.
집요하게 cd를 뜯고 있는 은수


102. 차 안 낮

차창을 내려 손을 뻗어 바람을 느껴보는 상우
시원하다.


103 기차역. 낮
기차역 창 밖에 상우의 자전거가 세워져 있다.
자전거 뒤에 묶여있는 오렌지색 농구공.

창 안쪽 바로 밑 의자에 상우와 할머니가 앉아있다.
표정 없이 개찰구를 보고 있는 할머니.

상우 : (짜증섞인 목소리로) 할머니 이제 가요..
할머니 : 상우가 아직 안왔는데..
상우 : 할머니 제가 상우예요
할머니 : (쳐다보다) .. 아냐 상우가 아직 안왔어..
상우 : 할머니 ..제가 상우라구요.
이제 여기 오지 마요 할머니
여기 자꾸 왜 와요 .. 여기 할아버지 없어요..

화를 내는 상우를 보고 있던 할머니
주머니를 뒤져 100원 짜리 하나를 상우의 손에 쥐어주신다

오후 햇살이 길게 들어오는 역사 안
할머니는 개찰구를 보고 계시다.


104 상우집 낮
상우 집에 기차소리가 이어진다.
할머니 방에 틀어놓은 녹음기에서 나오는 기차소리
상우 옆의 할머니 편안한 표정으로 앉아 계신다.


105 포장마차 밤
주인 아주머니가 술병과 안주로 야채 몇 개를 놓고 간다.
상우 아주머니가 놓고 간 술병을 잠시 보고 있다

 

한잔 따라 마시고는

상우 : 아주머니. 얼마예요 ..

그냥 나가는 상우


106 상우집 밤

이불덮고 누워있는 상우. 핸드폰이 울린다
벌떡 일어나 가방을 뒤진다. 핸드폰을 막 찾는 상우.

핸드폰은 꺼져 있다.
핸드폰을 만지는 상우.
버튼을 몇 개 누르고 ..메모리에서 은수의 번호를 지워버린다


107. 핸드폰 대리점 낮

상우 핸드폰 대리점으로 들어선다.

여직원 : 무얼 도와드릴까요 손님 ?
상우 : 핸드폰 바꿀려고 왔는데요 ..
직원 : 전화번호 그대로 쓰실 거예요 ?
상우 : ..아니요.
여직원 : 그러세요 ...그럼 이걸 적어주시겠어요 ?

서류에 빼곡히 무언가 써 내려가는 상우..

상우 : 에이 그냥 놔두세요.


108. 다방. 낮

정국과 차를 마시는 상우.

상우 : 신기하다. 왜 못 잊지? 나 미련 같은 거 없거든 ?
........... 나도 잊고 싶어..걔는 잘도 있던데 ..난 왜 안되지 ?
분해서 그런가 ? 지가 먼저 꼬신 거 아냐 ?

좀 허탈하게 웃고있는 상우. 정국은 듣고만 있다

상우 : 이상해... 잠도 안와..
힘든데 왜 못잊지 ? 왜 생각나냐구 ..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다구 생각했었어..
근데 지금은 미워. 제일 좋아하기두 하고... 이게 말이 되니 ?
정국 : ....이따가 술 한잔 할까.
상우 : 아냐 됐어 ..나 별로 술 먹고 싶지 않아.
맨 정신으로 잊고 싶어.


나...... 요즘은 우리 할머니가 부럽다...
얼마나 좋을까 .. 좋은 거만 기억하고...

정국 : .......(한참을 바라본다)..
상우야 ..그 여자도 언젠가는 늙을 꺼 아니니..
애 낳고.. 마흔살 쉰살 조금 있으면 할머니 될 꺼 아니니.
그런 생각을 해보라구..........사실이 그렇잖아
그런 생각하면 조금 나아지지 않니 ?
상우 : 그러네 ...그런 생각하니까 갑자기 불쌍해진다 근데....
그래두 보고 싶어.
친구 : (한참을 바라본다).....상우야 ...길가에 차 세워놓구 왔거든..
이따가 밤에 술 한잔 해 그럼
상우 : 나 술 안먹는다니까 ...술 안먹어 나
... 술 먹으면..
... 걔가 돌아올 것 같애...
정국 : 아 참~ 그랬지 ..나 지금 가야 되거든 ..
상우 : .....그래 그냥 가라 ..가 ~ 니가 친구냐 .. 새끼야 ..

벙한 표정의 정국.

상우 : 아냐... 미안해.. 그래 그냥 가 나중에 또 보자 ..


109. 약국 낮
상우 들어와 약을 찾는다.

상우 : 먹으면 바로 잠드는 걸로 좀 주세요


110 상우방 밤
깊은 밤.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벌떡 일어나는 상우.
방문을 열고 나간다.
마루에 걸터앉은 상우마루에 시계를 본다.


111. 은수의 집 앞.. 밤
어른거리는 은수의 모습.
은수의 방에 불이 꺼진다.

바라보던 상우. 차를 출발 시킨다.


112 분기점 밤
차를 세우는 상우. 라디오를 켠다.
은수의 심야 방송이 나온다. 은수의 목소리를 듣는 상우


113. 차안 아침
상우는 차안에서 자고 있다.
다시 은수의 집 앞이다

창을 두드려 상우를 깨우는 은수.
여행가방 같은걸 들고 있다.

눈을 뜨는 상우. 약간 눈이 부시다

은수 : 상우씨, 여기서 뭐하는거야.
상우 : ...보구 싶어서 왔어.....
은수 : .....
상우 : ......어디 가 ?
은수 : 응.
상우 : ...


한숨을 쉬더니 돌아서는 은수. 아무 말 없이 자기 차로 돌아간다.
차를 출발시키는 은수. “초보운전”이 붙어있는 새 차다.
상우 멀어지는 차를 본다.


114. 콘도 앞 낮

은수의 차가 콘도 쪽으로 들어간다.
잠시 뒤 나타난 상우의 차도 들어간다.


115. 콘도 주차장. 낮

이리저리 살피며 주차장을 뒤지는 상우.
은수의 차가 주차되어있다.
상우 차를 멈추고 은수의 차를 보고 있다.
은수의 차 앞에 선 상우. 주위를 둘러본다.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꺼내더니 은수의 차를 긁기 시작하는 상우.

한참을 긁고 있는데 은수가 현관에서 나온다.
은수와 눈이 마주치는 상우. 상우 급히 차를 몰고 도망가기 시작한다.
한참을 도망가는데 뒤에서 하이빔을 쏘면서 따라오는 은수
상우 속도를 높인다. 멀어지는 상우의 차
은수 차를 길가에 세우고 내린다.
도망가는 상우를 한동안 바라보는 은수.

비행기가 지나간다.
하늘을 보는 은수.

f.o


116. 상우집 낮
낙엽이 지고
눈이 내리는 상우집 마당

 

117. 상우방 낮
멍하니 누워있는 상우.
눈 내리는걸 보고 있다가 스르르 잠든다


118. 할머니 방 (밤)

오래된 장롱, 맨 밑 칸 서랍을 여는 할머니. 상자가 나온다.
상자 안에는 오래 된 미제 쵸콜릿이며, 사탕. 상우의 교련복 단추 등이 들어 있다.


119. 상우방 밤

상우의 방문이 스르르 열린다.
어둠 속에 할머니가 들어오시더니, 잠을 자고 있는 상우 머리맡에 뭔가를 두신다.
상우 얼굴을 들여다보고는 한번 이마를 쓰다듬어 주시는 할머니
잠든 상우 머리밭에 사탕하나와 100원짜리 동전이 놓여있다.


f . o


120 상우 방 낮
상우 게슴츠레 눈을 뜬다.
창으로 햇살이 길게 들어온다.


121 상우 집. 낮
햇살이 따스하다. 할머니랑 나란히 앉아 해바라기 하던 상우
맑은 햇살 때문에 마당 구석구석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마당을 감싸고 있는 봄기운.

상우가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소리도 없이 눈물만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할머니는 상우를 오랫동안 바라보시더니
빙긋이 웃으면서 등을 토닥거려 주신다.

할머니 : (장난스럽게)자고로 떠난 버스랑 여자는 잡는 게 아니야. 상우야.

상우는 울음을 그치고 할머니를 쳐다 본다.
마당엔 봄이 오고 있다.


122 할머니 방 낮

다시 붙여놓은 할아버지의 사진 위의 테입이 오래돼서 사진이 너덜거린다.
할머니는 그걸 붙여보려 애쓰고 있다.

 

몇 번이고 쓰다듬으며 만지는 할머니
사진을 보며 엷은 미소를 짓고 있다.

할머니의 서랍 속에는 참 많은 것들이 있다.
누군가 입었을, 믿지 못할 만큼 작은 배냇저고리도 나온다.


고운 연분홍 한복을 꺼내놓고 하나 하나 마름질하듯 살펴보고 있는 할머니.

댓돌에 얌전히 놓여있는 할머니의 신발로 작은 버선발이 들어간다.
봄볕이 마당에 내리 쬐고 있다.


123 동네 낮

봄기운이 시작하는 동네길 사이로 멀어져 가는 할머니.
동네 앞길을 지나고 학교 앞을 지나고 개나리에 물들 것 같은 할머니.

양산을 들고는 개나리가 핀 길을 따라 하염없이 앞으로만 가신다.


124 시골길 (장의차 안) 낮

차창 밖으로 개나리꽃이 활짝 피었다.
한참을 달려가도 노란 개나리가 군락을 지어 피어있다

창 밖으로 꽃을 보고 있는 상우.
약간 눈이 부시다.

시골길을 달리는 장의버스


125. 할머니의 산소 낮

일꾼들이 땅을 파며 하관을 하고 있다.
사진 두 개.
그 중 하나는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젊었을 적 할아버지의 사진이다.


126 상우집 낮

마루에 앉아 마당을 내려보며 볕을 쬐고있는 상우
담담하고 평온하다.
눈을 감아본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슬며시 눈을 뜨는 상우
주변을 둘러본다. 꿈에서라도 깨어난 표정의 상우
담담하고 평온하다

f.o

 

127. 보리밭 낮
보리밭 한 가운데 파묻혀 소리를 따는 상우.
보리밭이 바람에 술렁인다.
보리밭 한 가운데 파묻혀 소리를 따는 상우 헤드폰을 낀 채 소리를 듣고 있다


128 어느 시골집. 낮

문밖까지 나와서 상우에게 인사를 하는 할머니.
상우도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

상우 : 아버지가 꼭 알려드리라고 해서요...
할머니 : (눈물을 훔치며)그래요....형님께 미안하다고 말도 못했는데..
상우 : 건강하세요..

할머니 : 잘 가요.....안부 전하구...
저.....(상우를 부른다)
상우 : ?
할머니 : 할아버지랑 많이 닮았어요.


129. 은수의 방송국. 낮

방송 원고를 보다 커피를 마시다..틀린 거 고치고.
원고를 보면서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고 끊는다. 바쁘다.

한 장 한 장 원고를 정리하다 손을 베는 은수.
무심코 손을 높이 들고 흔든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한동안 보다가 손을 내리고
창 밖의 봄비를 보며 앉아있는 은수

전화를 한다.

은수 : ....

끊으려다가 다시 수화기를 귓가에 가져간다.

은수 : ...나야.. 잘 지내 ?..

전화 끊고 창 밖을 보면
창 밖으로 보이는 노란 꽃들


130. 길가. 낮
길가에 뻘쭘이 서 있는 두 사람.
서로 말이 없다.

화분을 들고 있는 은수


131. 근처의 카페. 낮.
창 밖으로 벚꽃 한창인 그런 길
상우와 은수 마주 앉아있다
상우에게 화분을 건네는 은수.

은수 : 화분에 물도 주고 그러시는 게 좋대..
이거 할머니 드려..

상우 : ..
은수 : 잘 지내지 ?
상우 : 응 .. 잘 지내.
은수 : ..참 날씨 좋다.. ~
...오늘 같이 있을까 ?
상우 : ...
은수 : 그래 그럼..괜찮아. 나 갈게
상우 : 데려다 줄게
은수 : 아냐 됐어 나 혼자 갈게

카페를 나가다가 뒤돌아보는 은수
상우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희미하게 웃어보인다
상우도 그렇게 웃는다.

앉아있는 상우
창 밖 벚나무들 아래로 사람들 속에 은수가 가고 있다
벚꽃 구경하듯 천천히 걸어가는 은수

환한 빛이 스며드는 창가..
화분을 바라보는 상우.


132 은수집 낮
은수의 동네에는 비가 내린다.
귀에 익숙한 옛날 노래가 흐르는 은수 집.
후드득후드득 창문에 빗방울이 떨어지고.
예전처럼 썬글라스를 끼고 비를 만져보는 은수

f.o


133. 상우 집 낮
마당에 다시 봄이 왔다
상우 집 마당에는 초록빛이 선명하고
대형 박스들이 여러 개 쌓여있다

상우가 방 정리를 하고 있다. 옆에 여기저기 박스가 쌓여있고
서랍을 뒤지는데 테이프 하나가 나온다. 강릉 방송국이라고 써있다

카세트에 돌아가는 테이프. 예전에 상우가 따로 모아둔 은수의 소리들이다.

 

몇몇 은수의 음성이 들리고
강가에 물 닿는 소리가 들리다가

“죽을 때 기억 하나만 가져가라면 뭐 가져갈거야 ?”
“나 ?”

이어서 어수선한 상우의 방안에 은수의 콧노래 소리가 들린다.


미소짓는 상우. 박스에 넣어지는 테이프. 봉인된다.
여러 개 쌓여있는 박스 위에 얹어지는 은수의 테이프가 들은 박스.

마루에는 아버지의 노래자랑 사진이 걸려있다
할머니 젊었을 때 양산을 들고 찍은 뒷모습의 사진을 물끄러미 보는 상우
사진들을 벽에서 떼어낸다.


134. 상우집 마당 낮

아무도 없는 마당.
땅에 떨어지는 꽃잎들.
수돗가에도 젖은 분홍색 노란색 꽃잎들이 붙어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하얀 잎새들도 있다.
세숫대야에 동동 떠다니는 꽃잎들.


135. 동네길 낮

동네에 봄이 가고 있다.
마지막 남은 꽃잎이 떨어지는 길을 상우가 걷고 있다
세상구경이라도 하는 듯 느릿느릿 주위를 둘러보며 걷는 상우.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