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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컨슈머 라이프/문화탐방

[연극] 백마강 달밤에


예전에 썼던 공연평

'백마강 달밤에'는 은산별신제의 틀을 원형으로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면서 서로간의 못다한 이야기를 해보자는 발상에서 만들어졌다. 충청남도 금강(錦江)을 낀 마을 선암리(仙岩里)에서는 언젠가 마을 어귀에 아직도 남아있는 옛 백제 성터 자리에서 백제병사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 수백개가 무더기로 발견되어 원혼들을 제사 지내면서 시작된 별신굿이 열린다. 굿을 주재하던 堂집 할멈이 굿을 며칠 앞두고서 노쇠하여 몸져 눕게 되자 마을에서는 강경에 있는 박수무당 영덕이를 데려다 별신굿을 벌인다. 굿중에 堂집 할멈의 수양딸 순단에게 의자왕을 죽였다던 금화가 씌이고, 명부(冥府)로 의자왕을 찾아 나선다. 영덕도 의자왕을 만나러 冥府길에 동행한다.

冥府에서 이들은 차례로 성충, 계백, 의자왕을 만나게 된다. 충절을 지키다 결국 단식으로 죽음에 이른 성충은 가마우지가 되어 있다. 성충은 저승에서도 목구녕에 창살이라도 쳤는지 먹지 못하고, 먹기만 하면 이내 토해내는 목에 올가미 씌인 가마우지다. 이는 단식으로 인한 죄값임과 동시에 금화가 성충의 유교적 가치관이 현실을 도외시한 관념성에 기울어 있음을 성토하는 장면에서 드러나듯이 성충이 관념 내지는 사유의 덫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자신의 세 아들을 죽이고 전투에 임한 명장 계백 또한 자신의 업보를 짊어지고 있다. 그는 여러 모습으로 변신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세 아들을 잡아먹고 있다. 거미가 되어 거미줄을 쳐놓고 나비가 된 세 아들을 잡아먹기도 하고 개구리가 되어 혀를 이용해 파리로 변신한 세 아들을 잡아먹기도 한다. 자신의 조국 백제를 위해 끝까지 결사항전한 충신이지만 자신의 경제적 무능을 이유로 온 가족을 동반자살로 이끈 가장처럼 세 아들에게는 몹쓸 죄인에 불과하다.

의자왕은 우물 비슷한 곳에 갇혀서 병사들이 단검 혹은 대검 등으로 찌르는 것을 감내하고 있다. “말어. 나는 못 가. 내 병사 아흔일곱 명이나 남아 있대. 내가 없으면 그 병사들 저희 칼 어디 꽂겠는가. 나중에 우리 병사들 칼 다 꽂히면 내 그 병사들 데리고 백제로 돌아가겠네. 이 칼은 그 병사들 위패라네. 나 없으면 누가 그 병사 위패 가져가겠나.” 라는 대사에서 비록 방탕한 생활로 백제를 멸망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지만 이를 깊이 뉘우치고 후회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을 넘나드는 '백마강 달밤에'는 공연중 끊임없이 시야를 가리는 연기처럼 몽환적이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이들이 과연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다. 모기, 가마우지, 거미, 나비, 파리, 개구리 등을 표현하는 감각적이고 입체적인 장면들은 자칫 어둡고 침울할 수 있는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지옥의 모습을 그리면서 다양한 색채를 입히려는 시도는 영화 '천국보다 아름다운'을 연상시킨다.

堂집 할멈의 죽음과 대비되는 병원에서마저 포기해버린 다 죽어가던 어린 아이의 극적인 소생 내지는 부활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 그리고 소통의 문제를 던져준다. 아울러 종교적인 구원처럼 우리로 하여금 희망이라는 작은 불씨에 기대게 한다.


* 가마우지 낚시 - 가마우지는 검은 잿빛에 날지 못하는 작고 보잘것없는 날개를 가진 새로, 길고 끝이 구부러진 주둥이와 긴 목으로 물고기를 재빠르게 낚아채고 큰 물고기를 쉽게 삼킨다. 가마우지 낚시란 가마우지의 목 아랫부분을 끈으로 묶어 가마우지가 물고기를 삼키지 못하도록 한 다음 그것을 꺼내는 낚시 방법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