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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컨슈머 라이프/문화탐방

[넌버벌] 점프


예전에 썼던 공연평

공연 시작에 앞서 무대를 살펴보면 중앙에 가훈인듯한 "평범하게 살자"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오른쪽 구석에는 날짜 개념을 상실해버린듯한 달력이 보인다(이 달력을 유심히 관찰하면 초반부의 반전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허리가 휜채 지팡이를 짚고 다리를 후둘후둘 떨면서 위태롭게 걸음을 옮기는 노인의 등장으로 공연은 막이 오른다. 이 노인은 무대전환시마다 등장하여 관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라운드걸과도 같은 감초 역할을 한다.

택견 명인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공처가형 무술의 달인이자 화가인 아빠, 전국 며느리 무술대회 3년 연속 우승자이며 터프한 여경찰인 엄마, 술과 연애에 바쁜 취권 고수 삼촌, 발레형 무술의 대가 딸까지 도합 117단의 초절정 무술패밀리의 가족 소개가 이어진다. 여기에 무술과는 별 인연이 없어보이는 청학동 사내가 등장하고 할아버지는 난데없이 등장한 이 청년이 고향 친구의 손자라는 이유로 딸과의 결혼을 명령해 버린다. 이에 반발하는 가족들로 인한 호된 신고식 와중에 숨겨진 괴력의 비밀이 드러나고, 어느 형제 도둑의 등장으로 인해 결코 평범하지 않은 가족과 형제 도둑간의 한 판 승부가 펼쳐진다.

유머와 무술이 하나로 만났다. "치워라", "박하우유" 등 재미있는 대목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가방을 이용한 저글링, 술병을 들고 벌이는 취권, 로맨틱한 춤, 기계체조에서의 마루 연기를 연상시키는 환상적인 덤블링, 쌍절곤과 곤봉쇼, 범상치 않은 격파 장면 등의 다양하고 또 화려한 볼거리가 포진해 있다. 고난도 무예를 선보이지만 코믹한 요소를 담았기 때문에 섬뜩하기보다는 즐겁다. 관객중에서 남녀 각 한 명씩 선택된 무림 고수(?)는 배우들과 함께 공연에 참여하는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고 트레이닝복 또는 인형이 선물로 주어진다.

스토리 구조는 "하면된다"라는 영화를 연상시킨다. '라면된다'와 혼동되기도 하던 '하면된다'라는 커다란 가훈이 걸려있던 모습도 그렇고 사위가 결코 평범하지 않은 가족에 편입되는 점도 유사하다. 차이점이라면 영화 "하면된다"에서는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지지만 무예 퍼포먼스 "점프(Jump)"에서는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된다. 소심하고 나약해보이는 사위가 강렬한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은 "헐크", "슈퍼맨", "지킬앤하이드" 등에서 많이 본듯한 친숙한 설정이다.

무예 퍼포먼스 "점프(Jump)"는 넌버벌(non-verbal)을 표방하고 있다. 세계 투어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난타", "타오", "도깨비스톰", "사랑하면 춤을 춰라" 등의 경우처럼 대사는 최소한도로 하고 몸짓이나 표정 등을 이용해서 스토리를 전개한다. 좁은 무대에서 별다른 안전 장비도 없이 고난도 묘기를 펼치는 이들의 모습에서 무대 뒤에서 이들이 흘렸을 수많은 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공연 시작에서부터 커튼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즐거움이 끝없이 제공되기 때문에 1시간 30분간의 공연이 순간인양 금방 지나가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