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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컨슈머 라이프/기타정보

두 명의 선배, 인간성에 관한 슬픈 고찰


어제 두 명의 선배를 만났습니다. 10년이 넘도록 연락을 못하다가 얼마 전부터 연락을 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참으로 못나고 무책임한 후배인 셈이지요. 그런데 두 명의 선배를 만나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선배가 내가 닮고 싶은 선배인지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한 명의 선배는 많이 바쁜 듯한데도, 갑작스러운 후배의 연락에 만사를 제쳐두고 나와주었습니다. 심지어 이 못난 후배가 길을 잃어 헤매다가 약속 장소에 20분이나 늦었음에도 얼굴도 전혀 붉히지 않고 따뜻하게 맞아주었습니다. 저녁을 먹는 내내 화제는 나의 고민이었고, 선배는 묵묵히 들어주면서 내게 맞는 맞춤형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저녁 식사 내내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대학교 때도 술값이 모자라거나 하여 전화를 하면 어디서든 구세주로 달려와주던 선배입니다. 잠시동안 내 마음이 되어주는 누군가를 만나주면 마음 속이 따뜻하게 덥혀지면서 훈훈해집니다.



다른 한 명의 선배는 고등학교 선배입니다. 항상 이미지 관리를 잘하여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프롤레타리아를 지향하는 것과 같은 외관을 창출하면서도 실생활에 있어서는 부르쥬아적인 삶을 향유합니다. 학생운동의 문제의식을 늘 강조하면서도 이 선배가 학생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지금도 이 선배는 골프를 즐기고, 틈만 나면 해외로 외유를 떠나곤 합니다. 그럼에도 후배들을 만나면 "난 원래 소탈하잖냐?" 하면서 포차로 데려가 소주를 먹이면서 화제는 본인이 마신 고가의 와인들입니다.



두번째 선배에게 연락했더니 많이 바쁘답니다. 잠시 사무실에 왔다 가라고 하더니 옆사무실에 남아있는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혼자 고고한 척 이미지 관리에 여념이 없습니다. 고민이 많은 후배의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그런 것 따위에는 전혀 관심조차 없는 듯합니다. 어쩌면 내가 그 선배에게 별로 도움이 되어주지 못할 것 같으니 귀찮게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첫번째의 훈훈한 선배는 항상 후배들 챙기느라 바빠서 정작 본인의 삶에서는 안타깝게도 흔히 쓰는 표현으로 그렇게 잘 나가고 있지 못합니다. 그런데 처세에 능한 두번째의 영악한 선배는 본인이 원하던 모든 것들을 차례 차례 손에 넣고 있습니다. 첫번째 선배가 정말 좋고, 닮고 싶으며, 그 선배가 정말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왜 세상은 오히려 두번째 선배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것일까요?

태울 줄도 모르는 담배 한 개비가 그리운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