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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컨슈머 라이프/문화탐방

[책] 타인에게 말걸기 - 은희경



 첫 만남  

제가 은희경 씨의 "타인에게 말걸기"라는 책을 만난 것은 20대 때였습니다. 지금에서야 생각하는 것이지만 서른 이후에 만났더라면 더 좋았을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책에 있는 "악동과 같은 어긋남을 갖고 글을 쓰겠다"는 말을 보고 즐거워하며 메모지에 기록해 두던 시절이었습니다. 원래 그 전에 읽었던 은희경씨의 장편소설로 "새의 선물"이 더 유명한데 "새의 선물"을 읽고 나서 은희경 씨의 다른 작품들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 읽었던 "새의 선물"은 아이 같지 않은 영악함을 가진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보는 내용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주제가 담겨 있었지만 연극 배우처럼 자신을 객관화하는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책에서 특별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별다른 주저 없이 서점에서 골라든 책이 바로 "타인에게 말걸기"입니다.

새의 선물 - 10점
은희경 지음/문학동네
 책의 구성 및 내용  

"타인에게 말걸기"는 단편집입니다. "타인에게 말걸기"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을 포함한 여러 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녀의 세번째 남자", "이중주" 등 수록되어 있는 단편들이 하나 같이 강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습니다. 읽었던 당시에도 느낀 점이 많았기 때문에 이 단편집을 대상으로 삼아 감상문을 작성하여 독후감대회에 응모하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랑의 탈낭만화가 주제의식 속에 담겨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사랑의 환상에 푹 빠져야 할 나이에 날카로운 이면을 먼저 들여다보는 바람에 순서를 그르쳤다는 아쉬움이 있기도 합니다.

수록된 작품 중 "타인에게 말걸기"를 예로 들자면, 끊임없이 다른 이들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한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타인과의 소통을 갈망하지만 그 방법을 잘 알지 못합니다. 예컨대, 이런 식입니다. 회사에서 단체로 출장을 떠나기로 되어 있는데 시키지도 않은 김밥을 싸느라고 한 시간 이상 지각을 하고는 미안한 기색도 없이 생글생글 웃으며 나타납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남자가 있습니다. 이 남자는 소통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요즘 표현으로 치자면 쿨한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남자는 세상사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고 자신만의 세계에 안주합니다.

여자는 다른 곳에서 좌절을 겪을 때마다 남자에게 연락을 합니다. 여자는 말합니다. "넌 처음부터 친절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았어. 그래서 편했어." "너한테는 거절받더라도 별로 상처받지 않을 것 같았거든." 타인과 엮이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남자는 자신과는 전혀 다른 여자를 보며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현실에서의 사랑  

"타인에게 말걸기"는 사랑을 천상의 지위에서 지상의 지위로 격하시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헐리우드 영화 속 로맨틱한 사랑이야기에서 접하는 사랑보다 이 소설에서의 사랑이 현실에서의 사랑과 더 닮아 있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타인에게 말걸기"는 누군가로부터 위로 받고 싶지만 단자화된 외로운 개인들의 시대적 아픔을 너무나도 핍진성 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또 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후기  

"타인에게 말걸기"는 "새의 선물"과는 달리 아직 개정판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다행히 인터넷 서점을 둘러보니 중고책이 남아 있네요. 96년도에 출간되었던 책이니 15년이 되었습니다. 도서 가격이 그간 많이 올라서인지 가격이 싸게 느껴집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도 참 많이 변했겠죠?

타인에게 말걸기 - 10점
은희경 지음/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