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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컨슈머 라이프/문화탐방

[책] 19 29 39 - 최수영, 정수현, 김영은 지음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책이 두 명의 작가가 레드(rosso)와 블루(blu)로 나누어서 여성작가 에쿠니 가오리는 여자주인공을, 남성작가 츠지 히토나리는 남자주인공을 그려나간 연기바둑과 같은 것이라면, 이 책 19 29 39 의 경우에는 세 명의 여성작가가 각각 자신의 나이대에 맞는 여자주인공을 그려나간 작품입니다.

19 29 39 - 10점
정수현.김영은.최수영 지음/소담출판사

이 책을 선뜻 집어들게 된 것은 단지 압구정 다이어리 혹은 페이스 쇼퍼 라는 소설로 칙릿 작가로 너무나도 잘 알려진 정수현 작가가 참여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읽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대별 여성의 심리 묘사가 꽤 그럴듯했다고 느꼈거든요.



연극 라이어에서처럼 한 남자가 여러 여성을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한 명도 아니고 자그마치 세 명인 것이죠. 영화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에서와 유사하려나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9세 아가씨, 취업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29세 아가씨, 이미 한번의 결혼에 실패하여 다음을 기약하는 39세 이혼녀 이렇게 세 명의 미스(돌싱 포함)들과 31세 차이한氏와의 연애담입니다.



김영은 작가는 1985년생, 정수현 작가는 1981년생, 최수영 작가는 1973년생입니다. 각각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 심리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일부 묘사는 심하게 리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에요.


물론 나도 결혼했던 이유가 엑스를 사랑해서라기보다 건강하게 초산을 할 수 있을 때 하자는 것이 더 컸던 여자다. 당장 결혼하긴 싫지만 나중에 못할까 봐, 아이를 낳아야 할지 어째야 할지 모르지만 나중에 낳을 수 없을까 봐, 반쯤 접는 심정으로, 세월과 타협하는 기분으로 결혼하는 여자가 어디 나뿐이겠냐마는, 다들 말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시작은 타협이지만 누구나 결혼 후 행복하길 바라니까. 그 닥쳐올 행복에 부정 탈까 봐 그런 말은 안 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들었던 생각은 19세의 사랑, 29세의 사랑, 39세의 사랑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나이대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약간의 설렘과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마련이겠지만 결정적으로 다르지는 않다는 거죠. 대학생이 될 때 이제 나도 성인으로 대접받는 그 설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눈물 흘리고 내 삶이 다 끝나간다는 생각의 서글픔, 불혹의 나이를 앞두었음에도 여전히 아이처럼 여린 나의 모습에 느끼는 좌절들 모두 크게 다르지 않죠.



국내 창작 뮤지컬 중에 사비타라고 있어요. 사랑은 비를 타고 의 줄임말이죠. 거기 보면 20세의 실수투성이 아가씨 유미리와 두 명의 형제가 등장합니다. 두 명의 형제는 각각 30세와 40세의 나이죠. 유미리가 외치는 대사가 늘 기억에 남아요. "저는요,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면 조금은 달라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당신들 보세요. 여전히 서로에서 생채기만 내고 있잖아요."

영화 전우치에서도 아주 어린 아이에게 "더 살아봐야 아무것도 없단다"라는 섬뜩한 말을 남기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나이듦에 따라 자연스럽게 성숙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의식적으로 계속 자신을 가꾸어 나간다면 조금씩 성장할 수 있는 거겠죠. 이 책 19 29 39, 우연히 만난 괜찮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