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마트컨슈머 라이프/문화탐방

[책] 란제리 소녀시대 - 김용희 지음


문학평론가 김용희氏의 첫 장편소설입니다. 통상 문학비평가가 쓴 책은 재미없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 책은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칙릿(chick lit) 계열의 톡톡 튀는 작품들과는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목 란제리 소녀시대는 마케팅 목적을 위한 제목 같은데 misleading 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엄마 어렸을 적에 류의 복구 느낌이 나는 작품이거든요.

란제리 소녀시대 - 10점
김용희 지음/생각의나무

할머니 또는 어머니로부터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것은 이 책이 1979년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979년의 고등학교 2학년 8반 학생들 이야기입니다. 작가와 같은 또래의 여고생들이 등장합니다. 주인공 이정희는 대구에서 완구공장을 하는 집안의 둘째딸입니다. 남학생들과 빵집에서 소지품으로 짝꿍을 정하는 미팅을 하기도 하고, 일찍 오는 순서대로 난로 위에 도시락을 올려놔 누룽밥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커다란 양푼에 도시락 반찬을 죄다 섞어서 같이 퍼먹기도 하는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어머니 세대로부터 워낙 많이 들었던 이야기라 이제는 마치 내가 직접 경험한 것처럼 생생한 대목도 있긴 한데 핍진성이 살아있는 것은 작가가 동시대를 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자기자신에게 빠져서 남들의 삶에 그렇게 관심이 없다. 타인의 삶에 미친 듯이 관심이 일 때는 딱 한번이다. 자신의 삶을 좀 더 윤기나게 돋보이게 할 남의 스캔들이나 험담을 늘어놓을 때다.


우리는 보통 기성세대는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였을 것으로 착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뮤지컬 그리스에서도 나오듯이 어느 세대나 젊은 시절에는 반항적이고 도전의식을 갖춘 외로운 청춘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아이는 소년 소녀를 거쳐 결국 어른이 됩니다.



지금의 교권추락과 반대의 측면에서 예전에는 훈장님의 회초리에서 비롯된 무소불위의 비틀어진 교권이 주어지기도 했죠. 이 책 란제리 소녀시대에도 그런 대목이 나옵니다. 남자선생님이 여고생들 브래지어를 뒤에서 확 잡아당겼다가 놔서 마치 고무줄총처럼 사용하여 등짝에 시퍼렇게 멍이 들고, 꾹 참던 아이들이 결국 쉬는 시간에 수치심에 엉엉 우는 대목입니다.

란제리 소녀시대의 결말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부분에서 굉장히 슬프고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 책을 두고 너무 밋밋하다는 평가를 내리는 서평도 볼 수 있었는데 전 그냥 "아, 그렇지" 싶은 대목들만으로도 충분히 잔잔한 감상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섹시해보이기 위해 생리대를 브래지어에 집어넣은 것을 들키는 장면, 엉덩이 체벌에 대비하여 치마 속에 체육복 바지를 덧입는 장면 등을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