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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컨슈머 라이프/문화탐방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



예전에 썼던 공연평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는 2004년도 한국뮤지컬대상 4개부문(최우수작품상, 여우주연상, 작사 및 극본상, 음악상)을 석권하였으며 한국뮤지컬사에 한 획을 긋는 작품이다. 브로드웨이 진출을 위해 소극장 뮤지컬에서 대극장용 대형뮤지컬로 거듭나는 진통을 겪고 있다. 실제로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본래의 뜻과 어긋나게 슈퍼스타가 되어가는 예수를 보고 느끼는 유다의 갈등이 핵심을 이룬다면 '마리아 마리아'는 더렵혀진 영혼과 결별하고 예수와의 만남을 통해 순백의 맑은 영혼으로 거듭나는 마리아의 심리 묘사가 주된 내용을 이룬다.  

마리아는 예수와의 만남을 통해 어릴적 상처를 극복하고 새롭게 태어난다. 마리아는 예수에 대해 이성애를 느낌과 동시에 그의 거룩한 사랑에 감화받는 복합적인 감정을 갖는다. 예수가 왕이 되면 오른팔이 되겠다는둥 왼팔이 되겠다는둥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있던 제자들은 막상 바리새인 및 제사장들에 의해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힐 운명에 처하자 예수를 알지 못한다고 발뺌하기도 하고 그를 외면한다. 끝까지 남아 예수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는 이는 오히려 만인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던 마리아뿐이다. 

소극장에서는 배우가 눈썹을 찌푸리는 것만으로도 언짢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지만 대극장에서 배우가 같은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큰 동선으로 팔을 내젓고 펄쩍 뛰고 목소리의 톤에도 변화를 줘야 한다. 이렇듯 대극장 공연에서 무대와 관객간의 거리는 소극장에서와 큰 차이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소극장에서 마리아에 몰입되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 펑펑 울었던 관객이 대극장 공연에서는 약간의 낯설음을 겪을 수도 있다.

대극장으로 이동하면서 오르간 등 다양한 소품이 추가되었고 안티바스의 마술 등의 오락적인 요소가 가미되었다. 예수를 따르는 이들과 바리새인 및 제사장들의 심리를 묘사하는 곡이 추가되어 전체적인 틀이 확대되었다. 예전에 비해 등장인물이 많이 늘어났으며 군무도 더 화려해졌다. 율법을 강조하는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의 굵직한 중저음과 이에 대비되는 제자들의 자유분방하고 힘찬 음색이 서로 팽팽히 맞서면서 화음을 이루는 장면은 대극장의 이점을 충분히 활용한 명장면이다. 

마리아역의 강효성님은 타락한 영혼에서 순결한 영혼으로까지 변화무쌍한 마리아를 무난하게 잘 보여줬다. 다만 어린시절의 트라우마(trauma)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은 김선영님의 목소리가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서인지 그때처럼 소름 돋는 경험은 하지 못했다. 예수역의 김현성님은 마리아에게 감화를 주는 따뜻한 카리스마를 그대로 느끼게 하기에는 아직 부족했다. 들러리 역할에 불과했던 조연들의 비중이 강화되고 수준 또한 향상되어서 전체적인 공연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였다.

비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배경지식이 없이는 이해가 버거운 부분들이 일부 있었다. 예컨대 당시 핍박받던 유대인들이 기다렸던 메시아(구세주)는 그들을 로마로부터 해방시켜줄 수 있는 지도자 즉 왕이었지만 예수는 그러한 기대와 달리 이들에게 적까지도 포용하는 인류애적 사랑을 가르쳤다. 제자들이 예수를 왕으로 추앙하는 것과 이에 대해 예수 자신은 이를 단호하게 반대하는 것은 이렇듯 성서와 그 밑바탕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이해가 한층 수월하다.

피드백을 통해 내용이 추가되거나 삭제되는 등 더 나은 공연을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예컨대 예수가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어나게 한다는 대목이 있는데 그속에는 소경에게 아름다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일깨워주고 앉은뱅이에게 당당하게 일어서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의미도 있다. 그런 면에서 예수가 실제로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장면을 빼버린 것은 더 넓은 해석의 여지를 남겨둔다는 점에서 수긍할 수 있다.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가 대형뮤지컬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최근에 더 나은 공연을 위한 쓴소리를 많이 접하게 된다. 분명 채찍만이 사랑은 아니겠지만 채찍도 사랑의 한 방식임을 이해하고 달게 받아들인다면 브로드웨이에서도 호평받는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믿는다. 일반관객층이 거의 부재한 상황에서 매니아층의 눈높이에 맞추기에 어려움이 많겠지만 이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충족시킬 수 있다면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쓴잔은 영광의 그 날을 위한 소중한 밑거름이다.

* 12월 24일 오후 4시 공연 커튼콜에서는 관객에 대한 서비스로 마리아의 어머니역을 맡았던 윤복희님의 '당신이었군요'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1월 1일 오후 7시 공연에서는 그러한 순서가 없어서 못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