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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소비/문화생활

[명품연극] 연극 유리알 눈(Des yeux de verre) 추천 리뷰


연극을 즐겨찾아 하루라도 공연장을 찾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던 시절 주로 대학로에 위치한 소극장들을 찾곤 했어요. 대학로는 아무래도 연극의 메카라고 불릴 정도로 아기자기한 연극 공연장들이 밀집되어 있다 보니 접근성이 좋았다고 할까요? 그런데 간혹 대학로가 아닌 다른 곳에 있는 공연장을 찾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예컨대 홍대입구역 근처에 떼아뜨르 추라는 소극장을 예로 들 수 있죠. 산울림 소극장도 신촌에서 찾을 수 있는 그러한 공연장 중에 하나에요. 대학로에서 좀 떨어져 있는 관계로 정말 연극이 좋아서 일부러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다면 찾기 힘든 곳에 위치해 있죠. 그렇지만 굳은 결심 끝에 힘든 발걸음을 옮겨 산울림 소극장을 찾으면 1층에서 마주치는 산울림 카페와 곳곳에 걸려 있는 사진 액자들이 반갑게 맞아주곤 했습니다.



산울림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유리알 눈을 보기에 앞서 관련 기사 등을 찾아 보았습니다. 소개팅을 하기에 앞서 사전 정보를 어느 정도 전달받으면서 기대감을 높여갈 수 있듯이 연극 유리알 눈 관람에 앞서 관련된 내용을 미리 알고 보면 색다른 맛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제작발표회가 있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작발표회 내지 시사회를 많이 여는 작품에 대해서는 믿음을 갖는 편이에요. 그만큼 작품에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거든요. 영화를 봐도 가끔 대형 블록버스터가 감독이나 배우들의 네임밸류에 의존하면서 신비주의 전략을 사용하곤 하는데 그런 경우 겉만 번지르르하고 알맹이가 없는 경우들을 많이 발견했거든요. 하지만 제작발표회를 통해 까칠한 관객들의 삐딱한 시선을 통과한 작품의 경우 어느 정도 신뢰가 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내용을 살펴 보니 그렇게 대중적이지는 않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친상간의 소재도 그렇고 캐나다 퀘백의 작가 미셀 마크 부샤르가 프랑스어(불어)로 만든 작품을 국내에 소개하는 것이어서 정서적으로 맞지 않는 측면도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했었죠. 극단 프랑코포니 클럽에 대해 생소했는데 이름에서 약간 이국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전세계 불어권 지역의 좋은 현대 희곡을 찾아 국내에 번역하여 소개하고 공연하고자 하는 극단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괜찮은 프랑스 희곡을 국내에 많이 소개해주는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빠 다니엘(이상구 扮)

저는 2011년 2월 24일 공연을 관람하여 첫공은 아니고 두번째 공연 쯤 되겠는데 첫공과 비슷한 느낌이 살짝 있었습니다. 비디오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고 공연 관계자로 보이는 분들이 다수 자리를 함께 하셨거든요. 연극이나 뮤지컬 공연에 있어 첫공과 막공을 일부러 찾는 이들이 있습니다. 첫공은 긴장도 많이 되고 하여 실수도 많은데 막공 쯤 되면 그 동안 관객과 호흡하면서 계속 발전하여 멋진 완성도를 보이고, 심지어 배우들이 여유를 찾아 팬서비스 차원에서 애드립도 몇 개 날려주고 하는 맛이 있거든요. 연극이 관객들의 성원에 힘입어 생물체와도 같은 유기적인 진화의 과정을 거치는 것에서 매력을 느껴 첫공과 막공을 모두 찾는 팬들이 있는 것이겠죠.

연극은 "아빠 사랑해"라는 절규와 함께 시작합니다. 무한 반복되는 사랑한다는 말이 그렇게 소름끼칠 수가 없는데 말하는 인형에 녹음된 이 절규는 이후 진행될 시놉시스를 위한 복선의 역할을 합니다. 이 연극 유리알 눈은 근친상간 내지 아동 성폭력 및 아동학대와 같은 불편한 소재들을 우리에게 안겨줍니다. 배경은 인형을 만드는 장인의 집이고, 등장인물은 인형 장인(다니엘), 부인(쥬디트), 큰 딸(브리짓), 작은 딸(막내 딸, 에스텔) 이렇게 네 명입니다. 아픈 상처를 안고 집을 떠나 이모의 집에서 자란 막내 딸 에스텔이 15년 만에 펠로피아라는 가명으로 이들을 방문하면서 갈등이 고조됩니다. 공교롭게도 다음 날 인형 회고전과 관련하여 기자들 앞에서의 회견이 예정되어 있는데 에스텔은 그 자리를 통해 뒤틀린 과거를 폭로하겠다고 엄포를 놓기 때문이죠.

엄마 쥬디트(박현미 扮)

흔히 시원섭섭하다는 말을 영어로 Mixed Feelings 라고 표현합니다. 복합적인 감정이라는 뜻인데 이 연극에서는 그러한 복합적인 감정이 드러나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몰입하지 않는 경우 리얼한 연기를 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약간 모자라고 이상해 보이기까지 하는 큰 딸 브리짓은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동생 에스텔에 대해 묘한 질투를 느끼면서도 어렸을 적 같이 하던 놀이를 떠올리며 여동생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엄마 쥬디트는 막내딸 에스텔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보냈듯이 딸들에 대한 애정을 간직하고 있지만, 세 명으로 이루어진 가정의 균형을 깨기 위해 돌아온 침입자인 에스텔을 썩 달가워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연극 유리알 눈 말미에서 쥬디트는 이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죠.

아빠인 다니엘의 경우 평생 인형만을 제작해 온 장인인데 딸 에스텔을 만나기 위해 멋지게 치장하는 등 반가운 마음을 숨기지 못합니다. 이로 인해 큰 딸 브리짓의 질투심을 부추기기도 하죠. 다니엘은 에스텔을 진즉에 알아본 것으로 보이지만 순간적인 욕정을 이겨내지 못한 자신의 부끄럽고 숨기고만 싶은 과거 때문에 그 사실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아빠 다니엘은 어떻게든 바깥 세상으로의 비상을 꿈꾸는 부인 쥬디트와 달리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그저 묵묵히 인형만을 제작하는 외로운 영혼이기도 합니다.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말하는 에스텔이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은 말할 것도 없겠죠. 에스텔은 자신이 겪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가족들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애증을 토로합니다.

큰딸 브리짓(김정은 扮)

연극 유리알 눈은 화려하게 차려입고 모처럼만의 데이트를 즐기려는 커플의 아주 특별한 외출 또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화기애애한 공연 나들이에는 적합하지 않은 공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화된 사회 속에서 단자화된 개인들 틈을 비집고 드는 왠지 모를 외로움, 겉으로는 평온을 유지하고 있지만 마음 속에 끊이지 않는 근원적인 불안감 등의 실체를 파헤쳐보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감히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산울림 소극장을 찾아 연극 유리알 눈(Des yeux de verre)과 함께 하는 두 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그동안 애써 외면하고 덮어두었던 불편함을 마주하시길 권합니다. 우리가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연극 유리알 눈이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을 투명한 유리알처럼 있는 그대로 여과 없이 드러내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막내딸 에스텔(이서림 扮)